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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Mar 10. 2018

8. 하늘의 계시로 지어진 바다 위  수도원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le)>


수 차례 이어진 하늘의 계시.


    

이른 아침의 몽생미셸

노르망디 끝자락. 대서양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수도원이 있다.

모 항공사의 광고에도 등장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곳은 밀물 때면 섬이 되는 바위섬에 지어진 수도원 몽생미셸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몽생미셸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함께 과거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거쳐가는 수도원이었다.

유럽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크다는 이 곳 바위섬에 어떻게 이런 수도원을 세울 수 있었을까?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비로운 수도원 몽생미셸이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서기 708년 이곳의 주교였던 오베르(Aubert) 주교의 꿈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바위섬에 수도원을 지을 것을 계시했다고 한다.

미카엘 대천사로 부터 계시를 받는 오배르 주교(위키미디어)

바위섬에 어찌 수도원을 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이라 생각한 주교는 미카엘 대천사를 본 것이 꿈이라 생각하고 대 천사의 계시를 무시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두 차례나 더 꿈에 나타난 미카엘 천사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주교의 머리를 내리 쳤다고 한다. 꿈인 줄 알았던 주교는 자신의 머리에 난 상처를 보고서야 꿈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공을 들여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18세기까지 무려 1000년에 거쳐 짓고 또 짓고.


그사이 이곳은 처음에는 수도원으로, 백년전쟁 중에는 요새로, 나폴레옹 시대에는 정치범들의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1863년에 와서야 다시 수도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현재 성 안의 실 거주 인구는 12명의 수도승과 수녀를 포함하여 40여 명이라고 한다.


성 입구의 도르래 문을 통과하면 수도원으로 가는 외길이 이어진다.

수도원으로 가는 외길 초입에 오믈렛으로 유명한 ‘La  Mère Poulard’라는 식당이 있다. 우리 식으로 부른다면 ‘풀라 엄마네’ 정도가 된다. 1888년에 아네트 풀라(Annette Poulard)라는 여인이 이 중세 도시에 여인숙을 차린 것이 식당의 시작이었다. 풀라는 당시 밀물 썰물의 시간 때문에 수도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서둘러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안심하고 묶고 갈 수 있는 여인숙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여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밀 썰물이 이 수도원 방문의 장애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니 세상은 다 살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이 식당은 몽생미셸을 방문하는 셀레브리티(celebrity)들은 아마 한 번씩은 들렀다가는 곳인 거 같다. 가게 안에는 낯익은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사인들이 온통 벽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유명세만큼 이곳의 오믈렛은 특별한 맛은 아닌 거 같은데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늘 길다. 파리의 고급 백화점 봉 마르쉐(Bon Marche)의 식품관 그랑 에피스리(Grande Epicerie)에서 이 집의 과자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걸 보면 내 입 맛이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식당 입구와 오픈 키친
유명 인사들의 사진으로 장식한 식당 내부

수도원까지 이르는 길은 중세 성벽 안 도시의 모습을 여기저기 보여주고 있는데 기념품 가게의 가고일 장식물은 언제 봐도 섬뜩하다.

그런가 하면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유럽 중세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은 골목이나 이 곳은 정말 좁다.)가 있어 그곳을 통과해 보려는 방문객들로 줄을 서야 할 정도다.

가게마다 자신들의 개성을 살린 재미있는 간판은 유럽 여행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곳에도 재미있는 간판들이 보이는데 그중 가장 맘에 든 것은 우체국 간판이었다. 누가 봐도 '여긴 우체국'이라고 하는 것 같은 사인이다.


가게 앞에 진열된 가고일 모형과 일인용(?) 골목, 우체국 간판

가고일(Gargoyle)

카르카손(Carcassonne)의  가고일

지붕에 쌓인 물을 빼내어 다른 벽들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 둘레에 설치한 장식으로 '가고일'은 7세기경 이 지역에 살던 무서운 용의 이름(Gargouille)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루앙(https://brunch.co.kr/@cielbleu/61 참조)의 한 성인이 이 용을 잡아 불에 태웠으나 불을 내뿜던 용의 입은 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고. 용의 입을 교회의 벽에다 걸고 악귀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전해 지다 보니 악마 등 상상이나 신화 속 모형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런 장식을 특히 그로테스크(Grotesque)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성 벽위를 걷다 보면 저 멀리 갯벌과 중세풍의 가옥들이 한 껏 정취를 자랑하고 있으니 수도원 방문이 아니더라도 볼거리가 많은 몽생미셸이다.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현대식 카페도 성업 중이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성 안의 이모저모.갯벌과 조화를 이룬 중세 가옥이 아름답다.

밀물, 썰물에 따라 수도원은 바다 가운데 섬으로 고립되기도 하고 갯벌이 들어 나 걸어 들어갈 수도 있는 수도원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순례를 하러 찾아오는 신도들이 밀물과 썰물 시간을 잘 몰라 수도원으로 향하던 중 밀물을 만나면 꼼짝없이 물에 휩싸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옛날이야기이긴 하겠지만 그럴 때 그들은 이러한 죽음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하니 신앙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성벽에서 내려다 본 육지 연결 도로(좌)와 갯벌에 만들어진 수도원 실루엣(우)

수도원 안은 성(Chateau)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유럽의 성들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다.

수도원 안에는 금욕과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 있는 듯 보인다. 수도원 창건의 주인공인 미카엘 대천사는 늘 그렇듯 사탄인 용을 물리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조각되어 있고 고딕 양식의 예배당은 장엄한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아 준다. 한편엔 속세와 단절된 수도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절벽 밑의 물자를 수송하는 수단인 커다란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식료품과 물자를 수도원 안으로 올렸다고 한다.

수도원 내부의 성 미카엘 동상, 채플, 수두원 안의 도르래 장비(이것으로 외부로 부터 물자를 받았다고 한다.)

수도원 안에는 공중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데 유럽의 어느 수도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회랑(cloister)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곳이다. 그중 벽 한 면이 유리로 장식되어 있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아찔함을 주고 있다. 가까이 가기에도 겁이 나는 이곳이 아마도 공중 정원이라 불리게 된 요인이 아닐까 싶다. 그 옛날엔 이 부분을 어찌해 놓았을까? 잠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절로 수양이 될 듯하다. 또한 이 곳은 삭막한 수도원 안의 경이로운 곳이란 뜻으로‘메르베이유(merveille:경이로움)’라고도 부른다. 이곳의 회랑은 수도승들이 명상과 영혼의 양식을 구하는 곳으로 사용된 그들의 실제 주거 공간이었다고 한다.

클로이스터
안에서 본 클로이스터의 유리 벽면과 건물 밖애서 본 유리 벽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첨탑위의 미카엘 동상(위키미디어)

그런가 하면 수도원의 지붕 맨 꼭대기에는 2.7m 크기의 미카엘 대천사의 금 동상이 있는데 이것은 1895년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미에(Fremiet)가 만든 작품으로 수도원의 역사에 비하면 상당히 최근 작품이다. 이 천사상은 청동(bronze)으로 만들면 너무 무거워 높이 올릴 수가 없기 때문에 구리(copper)로 만들었다고 한다. 유난히도 반짝이는 현재 첨탑 위의 동상은 1987년에 다시 올린 것이다.


엠마누엘 프레미에(Emmanuel Fremiet:1824-1910)


프랑스의 조각가로 루브르 옆 "Rue de Pyramid'에 있는 금색의 잔 다르크 동상이 그의 대표작이다. 1874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말을 탄 모습(equestrian statue)의 잔 다르크 동상으로는 최초의 작품이다. 또한 오르세 미술관 입구에 전시된 코끼리 상도 그의 1878년 작품이다. 아는 것이 주는 조그만 즐거움이다.

 

잔다르크 동상, 오르세 앞의 코끼리상

몽생미셸은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하나 있다.

전 세계 다른 어디서도 먹을 수 없다는 이 곳 만의 특산물인 양고기 요리다.

양고기 요리야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이곳의 양고기 요리는 재료가 다르다는 것이다. 몽생미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수도원으로 향하는 방파제 둑길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이 양들이 요리의 재료가 되는 ‘프레 쌀레(Pré-Salé)’다.

생후 4개월부터 매년 240일 이상 소금 초원인 수도원 앞의 갯벌에서 자라는 풀을 먹은 양들을 ‘프레 쌀레’라 부른다고. 난 원래 양고기를 안 먹는다. 그래도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이라니 큰 마음먹고 먹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양고기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없고 맛있기까지 하다. 거기다 노르망디 특산 칼바도스(https://brunch.co.kr/@cielbleu/63 참조)까지 곁들이면 제대로 훌륭한 노르망디식 저녁식사가 된다.

역시 먹어 보길 잘 했다. 여행은 이렇듯 늘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프레 쌀레’를 파는 레스토랑은 수도원으로 진입하기 전 마을 입구에 있는 메르퀴르(Mercure) 호텔에서 경영하는 식당을 강추한다.

이 식당의 이름은 아예 ‘Le Pré-Salé’다.

'Le Pré-Salé ' 메뉴와 양고기 요리

197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몽생미셸을 사진작가들은 여러 각도에서 그들의 작품에 담았다. 그 덕에 우리는 그림 같기도, 엽서 같기도, 사진 같기도 한 이 곳의 근사한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파리를 출발해 4 시간여 만에 도착한 몽생미셸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곳을 떠나 올 때까지 묵묵히 천년 세월의 시간의 무게를 방문객들에게 서서히 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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