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고유의 독특함을 경험해 보고 싶을 때 많이 찾게 되는 비엔비(Bed & Breakfast).
프랑스에서는 샹브르 도트(Chambres D'hotes)라고 하는데 일반 호텔에 묶는 것보다 현지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그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요즘 많이 이용하는 숙박 시스템이다.
야닉의 샹브르 도트 전경
도르도뉴 여행에서 우리가 묶은 샹브르 도트 주인은 '야닉'이라는 전형적인 프랑스 이름을 가진 의사 선생님이었다.
파리에서 외과의사로 일했던 50대 초반의 주인장은 도시 생활 그것도 파리 토박이의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의 낡은 주택을 본인이 스스로 리모델링하여 샹브르 도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거실에는 이 집의 리모델링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 첩까지 준비해 놓고 자신이 변신시킨 이 집에 대한 설명을 아침 식사 내내 우리에게 한다.
샹브르 도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묶은 방의 원래 사진을 보여 주는데... 그곳은 마구간이었다. 갑자기 몸이 근지러워지는 것 같더니 가축들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거부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꾸며진 방에서 마구간을 연상하기란 아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싶으면서 이 집의 대단한 변신에 주인장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내색도 못하고 태연한 척 그와의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원래 우리 여행 계획에는 라스코 동굴(https://brunch.co.kr/@cielbleu/69) 관람만 있었으나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복제라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니 야닉이 '그렇다면~' 하고 적극적으로 추천한 동굴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동굴에 더 애착을 갖는다는 말 까지 보태면서.
원래 여정을 잠시 이탈하게 되었지만 참으로 잘 한 결정이었다. 여행에서 얻는 덤이라 생각했지만 잠시 후 덤이 아니란 걸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동굴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는데 좀 전에 숙소의 'before'를 알고 가졌던 사소한 기우는 어느새 사라지고 어서 이 동굴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이 앞선다.
라스코 동굴에서 차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또 하나의 선사 시대 동굴.
도르도뉴 지방이 프랑스 남서부의 꽃이라면서 선사 시대 동굴 이야기만 하느냐 할지 모르겠으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들인데 어쩌겠는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몇 안 되는 선사 시대 동굴인 '페쉬 메흘르'.
산 속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어렵지만 이 곳에서 이런 벽화를 보게 될 줄이야...
페쉬 메흘르(Pech Merle) 동굴.
페쉬 메흘르로 가는 길
'페쉬 메흘르'는 도르도뉴에 인접한 카브레레(Cabrerets)지역에 있는 동굴이다.
라스코 동굴보다 더 오래되고 그림의 내용도 다양하거니와 원본을 볼 수 있으니 훨씬 의미도 있고 벽화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동굴이었다.
길이가 1마일 이상 되는 이 동굴의 벽에는 25,000년 전(라스코 동굴 보다도 8,000년이나 앞섰다.)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한때는 이 동굴 안으로 강물이 흘러 이로 인해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작품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동굴이다.
이 동굴도 라스코 동굴처럼 1922년 두 명의 마을 청소년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당시 이곳의 청소년들에게는 동굴 탐험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두 청소년도 동굴 탐험을 시작 한지 2 년 만에 이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26년부터 현재까지 대중에게 오픈되고 있으나 이곳 역시 동굴 보존을 위해 시간 단위로 제한된 숫자의 관람객만 입장시키고 있었다.
동굴 입구(연륜에 어울리지 않게 현대식 입구를 가지고 있다.)
동굴 입구에 서니 현대적인 외관과 시설들을 보고는 약간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너무 '오래된'에 집중하여 낡고 뭐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그러나 뭐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말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이곳은 관람객이 입장하기 전에 동굴에 관한 영화를 상영해 주어 동굴 관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불어로 진행되지만 화면만 보아도 무슨 소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니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는 없었다.
로비에는 기원전 3만 년부터의 연대표가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본 라스코와 페쉬메흘르의 이름을 보니 반갑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연대표에는 동굴 벽화와 함께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고 가장 최근 작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올려놓았다.
3만 년의 긴 세월을 놓고 보면 모나리자는 아주 최근 작에 속하는 셈이니 보는 재미와 함께 머리에 쏙 들어오는 학습 효과가 뛰어난 연대표였다.
재미있는 연대표
7개의 방이 있는 동굴 안의 벽에는 매머드, 점박이 말, 사슴 등의 당시 동물과 인간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를 크고 생동감이 넘치는 벽화라 한다면 페쉬 메흘르의 벽화는 라스코에 비하면 아깃자깃(?)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실감 나게 그려진 동물들의 그림도 라스코만큼 유명하지만 이곳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있는 그림이 있다.
다음 그림이 바로 그 그림인데 무엇이 특이하다는 것일까? 한 번 찾아보라는 가이드의 말에 손자국이 눈에 거슬리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에" '점박이 말'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점박이 말 주변에 장난처럼 찍힌 손자국이 보이지만 점박이 말도 흔한 그림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많이 익숙한 손자국이었다. 순간 나는 누가 이 선사 시대 유적에 장난으로 스프레이를 뿌린 게 아닌가 하는 난감한 생각까지 했다.
페쉬 메흘르의 대표 벽화
그런데 이건 현대인의 손자국이 아닌 2만 5천 년 전 이 동굴에 살았던 선사 시대 원시인 화가의 ‘핸드 프린트’였다. 2만 5천 년 된 손자국.
안료를 입으로 분사해서 손을 찍어낸 벽화인데 우리가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 많이 하던 손바닥 찍기와 유사한 기법이다.
'핸드프린트' 확대 사진
페쉬 메흘르의 트레이드마크
수 만년 전 동물들의 그림 속에 우리가 지금도 자주 쓰는 '핸드 프린트'가 보이자 마치 누가 장난을 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많은 이들이 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자주 사용하던 미술 기법이 25,000년 전에도 사용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추상화 같은 동굴 안의 매머드 벽화
선사시대 화가의 작업 상상도와 사용된 안료들
동굴 안의 텅 빈 공간에는 굵은 넝쿨이 치렁치렁 천장에서부터 바닥으로 늘어져 있는데 동굴 안의 다른 모습들과는 좀 생뚱맞아 보였다. 그런데 십 미터가 넘는 이 넝쿨은 살아 있는 나무의 뿌리 란다. 나무의 뿌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동굴 안의 십미터에 이르는 나무 뿌리
양분을 찾아 땅을 뚫고 내린 뿌리는 그만 뻥 뚫린 지하 동굴을 만나게 되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지하로 쭉 뻗어 내려가 십여 미터에 이르는 뿌리를 만들어 냈다니 그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동굴 가이드는 동굴 밖에 나가면 이 나무를 찾아 한 번 안아 주라고 한다.
매표소 근처에 흰 물음표가 표시된 나무를 찾으라고.
동굴 밖 지상에는 하얀 물음표가 표시된 이 나무의 상반신(?)이 의젓하게 서 있었다. ‘방금 너의 뿌리를 보고 왔어. 애썼다. 오래 버티거라.’ 하고 아는 척을 해 주었는데 마치 X-ray로 나무의 속을 들여다 본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상에 의젓하게 자라고 있는 지하동굴 긴 뿌리의 주인공
한때는 강의 물줄기가 지나갔다는 이 동굴에는 수 천년 동안 물로 깎아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꽃 모양의 돌 맹이, 조개 모양의 돌 맹이 등 가히 자연의 역작이라 할 만한 흔적도 곳곳에 널려 있다.
동굴 안에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들
인간과 자연이 만든 수 만년 된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페쉬 메흘르'.
수 만년 시간의 갭을 무심하게 만드는 '핸드 프린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곳.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니 둘을 분리해 생각하는 게 오히려 어색한 듯 느껴진 도르도뉴의 오랫동안 기억될 오래된 동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