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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un 30. 2018

3. 프랑수와 1세의 야심작, 샹보르

(Château de Chambord)


루아르 최대의 성, 샹보르(Château Royal de Chambord)

   

일반적으로 '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크고 웅장하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런 성 말이다.  이번에는 왕의 야심작으로 만들어진 루아르 최대의 성 샹보르 이야기다.


샹보르 성으로 가는 길,멀리 성의 탑들이 보인다.


샹보르 성은 프랑스인들에게 인기 있는 프랑수와 1세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성이다. 21세의 혈기 넘치는 젊은 왕 프랑수와 1세는 1515년 스위스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운 마리냐노(Marignano)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한창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가 된 전쟁이었지만 이 승리로 밀라노를 차지할 수 있었고 축하연에서 다빈치를 만나는 계기(https://brunch.co.kr/@cielbleu/80 참조)가 되었으니 승리에 도취될 만도 했다. 그는 선대의 다른 왕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면 그는 영토 확장보다는 이탈리아의 고급문화를 적극 수용하고자 노력했던 왕이었다. 프랑수와 1세는 그의 나이 25세가 되던 1519년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요소를 가미한 샹보르 성의 증축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샹보르 성은 르네상스 식 성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고 물론 거기에는 다빈치의 활약이 큰 몫을 했다.


많은 성들의 시작이 그렇듯 샹보르 성도 왕이 사냥을 나갈 때 쉼터 역할을 하는 성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을 증축하면서 왕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스카이 라인과 같은 모양의 성을 원했다고 한다. 처음 샹보르 성 위의 탑이나 굴뚝을 보았을 때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minaret: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떠 올린 것도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프랑수와 1세는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신성 로마제국의 샤를 5세를 이곳으로 초청하여 성의 위용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하였다.

샹보르 성의 프랑수와 1세 초상화

그러나, 1525년 파비아(Pavia) 전투에서 패하고 샤를 5세의 포로가 된 그는 마리냐노 전투의 승전기록을 삭제할 것과 어린 두 아들을 스페인에 볼모로 4년간 보내야 하는 힘든 시기를 갖기도 했다. 전쟁을 잘하는 왕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의 수준 높은 문화에 열광하여 프랑스 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킨 르네상스형 군주로 '코가 큰 프랑수와'란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앙리 4세(https://brunch.co.kr/@cielbleu/9 참조)와 더불어 프랑스 인들의 사랑을 받는 왕이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1547년, 드디어 샹보르 성은 완공되었으나 정작 그는 샹보르의 완공을 보진 못했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지만 본인은 평생 72일 밖에는 못 머물렀다고 하니 ‘누리는 것만큼 이 내 것’이라는 옛 말이 떠오른다.

현재 우리가 보는 샹보르 성은 프랑수와 1세의 아들인 앙리 2세를 거쳐 루이 14 세에 와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샹보르 성 모형


샹보르 성의 가치는 커다란 크기도 중요하지만 성의 독특한 디자인에 있다. 성 중앙에 설치된 이중 나선 계단을 중심으로  전 층이 좌우가 완전 대칭되는 구조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규모는 루아르에 있는 50여 개의 성 가운데 가장 크다. 426개의 방과 282개의 벽난로, 77개의 계단을 갖고 있는데 참고로 베르사유 궁은 700개의 방, 1250개의 벽난로, 67개의 계단을 갖고 있다.

성 안에 들어서면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 ‘이중 나선형 계단’(double felix staircase)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이 특이한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계단이 뭐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겠지만 이 계단의 원리를 알고 보면 좀 다른 얘기가 된다.

 이중 나선형 계단

‘이중 나선형 계단’의 원리는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동시 출발하여 걷기 시작하면 꼭대기에 도달할 때까지 마주치지 않도록 만들어진 구조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간중간 뚫린 구멍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로를 볼 수는 있으나 마주치지는 않는다. 지금이야 신기할 것도 없다 할지 모르지만 1500년대에는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계단을 걸어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같이 출발한 사람이 끝에 오를 때까지 보이질 않는다.  시작은 같이 했는데 말이다. 이탈리아의 천재 다빈치는 프랑스의 한 복판에 이렇게 또 하나의 역작을 남기고 있었다.

1 층부터 시작된 이 계단은 3 층까지 연결되며 마지막은 지붕 위의 아름다운 탑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탑의 최상부에는 프랑스 왕가를 나타내는 백합 문양을 얹어 이것이 왕의 성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중 나선 계단 설계도와 계단 중앙에서 위를 올려단 본 모습
조명탑으로 장식된 계단 상부와 왕가의 상징 백합으로 장식된  최상부

샹보르 성에 들어서면 천정이나 벽(특히 벽난로 위)에는 온통 불을 내뿜는 도마뱀 부조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징그럽기도 하고 성 안에 이런 동물을 만들어 놓은 프랑스 왕들의 취향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의미를 알고 보니 단순한 도마뱀이 아니었다.

이 도마뱀은 프랑수와 1세의 상징(emblem)인 살라맨더(Salamander)라는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 불을 먹고사는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라틴어로 ‘Nutrisce et extinguo’ 로 설명되는 살라맨더는  의미가 대단히 심오하다.  ‘좋은 불은 살리고 나쁜 불은 삼키는 동물’이란 뜻이란다. 의미를 알고 보니 갑자기 불을 내뿜고 있는 도마뱀의 모습이 징그럽다기보다는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무슨 일이든 선입관을 버리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신중함을 생각게 한 살라맨더였다. 그런데 루아르 고성 투어를 하다 보면 수많은 살라맨더를 만나게 된다. 모두 프랑수와 1세의 흔적들이다.


천장을 장식한 살라맨더와 프랑수와 1세의 이니셜 'F'
궁 안은 온통 살라맨더 천지다.


성이 크다 보니 겨울에 난방이 큰 문제였다고 한다. 중앙난방 시스템까진 상상할 수 없었고 그래서 복도엔 이렇게 커다란 흙으로 만든 스토브가 전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스토브
프랑수와 1세의 침대


샹보르에 전해오는 프랑수와 1세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판화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림의 내용은 이렇다.  

누나 마르그리트와 대화하는 프랑수와 1세(1817, Auguste Desnoyers작)

알려진 정부(mistress)만도 27명이나 되는 왕이지만 그는 그의 방 창문에 자신이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로  'Souvent femme varie: bien fol qui s'y fie':여자들은 변하기 쉬워서 그녀들을 믿는 사람은 어리석다' 이렇게 써 놓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창문에 썼다고 누나인 마르그리트(https://brunch.co.kr/@cielbleu/80 참조)에게 얘기하고 있는 장면의 그림이다. 마르그리트는 소양이 비슷한 이탈리아 출신의 조카며느리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든든한 후원자로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문필가로도 유명하다.

프랑수와 1세는 잘 생긴 외모와 예술적 소양이 풍부해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의 여인에 대한 이 말은 프랑스인들 사이에선 자주 인용되는 프랑수와 1세의 명언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샹보르 성의 그의 방 창문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데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3층으로 올라 가면 역시 사냥터의 쉼터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냥한 사슴(hunting trophies)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두 개가 걸려 있을 적엔 살짝 혐오감이 들기도 했는데 이렇게 복도와 방 전체를 장식해 놓은 걸 보니 멋지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참 많이도 잡았다는.

    




르네상스 양식의 로지아(좌)와 테라스(우)
성에서 바라본 사냥터 였던 숲과 성의 특징을 잘 표현한 재미있는 사인



왕들의 인기 취미였던 사냥은 현재도 그 전통이 남아 매년 6 월 샹보르 성에서는 큰 사냥 축제(Game Fair)가 열린다. 사냥 도구들과 말, 사냥개들이 총출동하는 이 행사는 거대한 샹보르의 정원을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로 가득 채운다.  


'Game Fair'의 여러 장면들


프랑스 친구와 함께 사냥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친척 집에 초대된 적이 있다. 메인 디쉬로 나온 스테이크 고기가 조그맣고 동그란 모양이라 무슨 고기냐고 물었다. 불어로 뭐라 하는데 나는 못 알아듣고 친구에게 '뭐라시니?' 하는 표정을 지으니 그 친구 대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녀의 대답은 'Bambi's Mom(밤비 엄마)'이었다. 순간 밤비 엄마면 사슴? 하는 생각이 스치는데 친구가 어느새 내 표정을 읽고 파안대소를 한다. 자기 삼촌이 직접 사냥해서 잡은 사슴 고기인데 사슴 고기는 아무한테나 내놓지 않는 최상급 고기란다. '너는 지금 vvip대접을 받고 있는 거니 아무 말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물론 요리 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처음 맛 본 사슴고기의 맛은 닭고기에 가까운 소고기 식감이라고 하면 될까? 맛도 맛이지만 귀한 고기로 대접해 주시는 그분의 성의에 내키진 않았지만 열심히 먹어보려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만일 외국인 친구가 사슴고기를 대접한다면 당신은 vip대접을 받는 중이라 생각하면 된다.

사냥이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는 신기한 사냥 도구 들도 많고  축제이니 만큼 먹을거리도 다양하여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해가 지기 시작하는 석양의 샹보르는 어느새 환상적인 자태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게다가 행사 말미에 진행되는 불꽃축제는 샹보르 성 위에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으며 왕들의 권세가 부럽지 않은 멋진 밤을 지나가는 여행객에게도 아낌없이 선사해 주었다.


 

해가 진 후 샹보르 성의 환상적인 실루엣
불꽃이 수 놓은 밤 하늘 아래 저 멀리 샹보르 성 지붕 위의 'light tower'의 불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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