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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Aug 14. 2018

6. 프로방스 절벽 위의 마을,  고흐드

고흐드(Gordes)

절벽 위의 마을, 고흐드(Gordes)  

   

처음 신도시 분당을 만들 때 한참 귀를 따갑게 하던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분당’ 이라던.


프로방스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내가 갑자기 신도시 광고 문구를 떠 올린 건 지금 가고 있는 곳이  프로방스의  평원에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이라서인가 보다.


엑상 프로방스(https://brunch.co.kr/@cielbleu/87 참조)에서 1시간여를 달리면 만나는 절벽 위의 마을 ‘고흐드(Gordes)’다.



 고흐드 성벽에서 내려다 본 전망

바이킹의 공격과 백년전쟁 등의 결과로 유독이 프랑스에는 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들이 많은데 ‘고흐드’는 바로 그런 마을들의 원조로 뽑히는 곳이다.

언덕 위에 요새를 만드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시절부터 주민 보호를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중세에 들어와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이런 요새들은 점차 마을의 모습으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요새 주위로 집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 언덕 위의 마을‘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아름다운 라벤더 평원을 배경으로 심심치 않게 절벽이나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중세 마을 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남산보다 100여 m 더 높아 언덕이라기보다는 절벽 위의 마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고흐드’는 기록상으로는 14세기에 와서야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데  백년전쟁 등으로 군사 요충지로 증축되고 성곽들도 보완된 모습이.

인구 2천 명의 자그마한 마을 '고흐드'도 당연히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https://brunch.co.kr/@cielbleu/74 참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마을을 찾아간다고 하니 프로방스 아줌마가 걱정을 한다. ‘날씨가 좋아서 마을이 보여야 할 텐데’라고.

무슨 말이냐 했더니 안개가 끼면 절벽 위의 마을은 안갯속으로 모습을 감춘다는 것이다. 무슨 잉카 제국의 마추픽추도 아니고 날씨 좋기로 유명한 프로방스에서 괜한 걱정이겠지 하고 찾아간 ‘고흐드’는 정말로 프랑스 판 마추픽추를 연출하고 있었다.

도로 사인은 '고흐드'가 가까웠음을 알려주고 있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손짓으로 안갯속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이 ‘저기가 고흐드야.’라면서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러나 하늘은 내편인지 두껍게 끼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 그 뒤에 숨어있던 마을은 고맙게도 아름다운 황금빛 자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보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안개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흐드’는 웅장 하다기보다는 아름다웠다. 가파른 절벽 위에 촘촘히 지어진 집들은 마치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았다.

‘고흐드’ 마을 안에서는 ‘고흐드’의 진가를 볼 수 없다. 안개가 끼어있던, 아니던 마을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이곳 전망대를 건성으로 지나치지 말고 꼭 방문하도록 하자. 

에펠이 보기 싫다고 에펠 안에 있는 식당 단골이 돼버린 모파상(https://brunch.co.kr/@cielbleu/6 참조)이 생각난다. 고흐드가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곧장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우를 범하지 말란 뜻이다

안개에 가려진 고흐드와 안개 걷힌 고흐드


마을 주민들은 ‘고흐드’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자랑한다.

하나는 마을 뒤 산속에 자리하고 있는 ‘쎄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이고 둘째는 마을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고흐드 성’, 세 번째는 고흐드 입구에 있는 ‘보리 마을(Village des Bories)’이다.


쎄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

 

고흐드에서 내려다본 쎄낭크 수도원과 입구에서 바라본 수도원
라벤더가 만개한 한 여름의 쎄낭크 수도원

‘쎄낭크 수도원’은 프로방스의 라벤더 벌판과 함께 엽서나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수도원이다. 추수 전 수도원 앞에서 꽃을 피운 라벤더가 수도원 건물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많은 사진작가들의 로망이 된 곳이다.

'쎄낭크 수도원'은 1148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다. 베네딕토 수도원인 이곳은 프랑스의 종교 전쟁 중에는 건물의 1/4이 파괴되고 신교도들에게 수도원을 빼앗기기도 했다. 프로방스 산속의 오지까지 종교 전쟁의 여파는 예외 없이 몰아 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름다운 라벤더 꽃밭이 과거의 상처를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어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어 있다.


 고흐드 성


고흐드 성
 고흐드 성안 마을 이모저모 , 성앞의 분수대와 전쟁참가 추모동상

마을 맨 꼭대기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고흐드 성’은 무려 1000년의 세월 속에 이 마을을 지켜온 고흐드의 터줏대감이다. 14세기에 성의 남쪽을 르네상스 풍으로 증축하면서 고흐드 성은 남과 북의 양면이 전혀 다른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을 주민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성이었으나 현재는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카페와 관광안내소, 기념품 샵, 벨기에 출신 현대 작가 폴 마라(Pol Mara)의 미술관등 과거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마을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고흐드 주민들의 자랑 거리가 될만하다.
고흐드 성 바로 앞에는 전쟁 추모비가 서 있는데 1,2차 세계 대전과 알제리 전쟁에서 사망한 마을 주민들을 위로하는 비였다.  주로 왕이나 이 지역 출신 유명 예술가들의 동상이 서 있곤 했던 자리에 전쟁에서 사망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지금은 아름다운 이 마을이 가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여 사진을 찍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런 추모비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여행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다. 인구 2천 밖에 안 되는 아름다운 프로방스 마을의 중앙에 놓인 추모비는 종교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간 세낭크 수도원 앞의 라벤더와 함께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잠시 숙연했던 마음에 기념품 가게 입구에 붙어있는 재미있는 문장이 웃음을 주었다.


고흐드 기념품 가게의 멋진 포스터와 재미있는 사인
고흐드 성 벽사이에 나 있는 예쁜 오솔길



보리 마을(Village des Bories)


보리 마을 입구와 마을 안에 남아 있는 돌로 만든 집들.


‘고흐드’와 함께 지역의 볼거리인 ‘보리 마을’은 수 세기 전 이곳에 살던 리구리안(Ligurians) 족들이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보리'는 이 지역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보리 마을’은 순전히 이 곳에서 나오는 돌로만 지어진 아주 특이한 가옥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에서 처럼 돌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이나 헛간 등 마을 전체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보리 마을’의 모습은 19세기에 주민들이 떠난 후 폐허가 되었던 마을을 1970년대에  옛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양치기들의 숙소나 마구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이 주요 건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돌로만 지어진 집들도 특이 하지만 이것을 지은 사람들이 리구리안 족이라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는데 대단한 사람들의 이름이 보인다.

대표적 인사로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he Columbus), 작곡가이자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쥬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프랑스 니스 출신으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한 혁명가이자 군인.)등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직접 지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들의 이름 뒤로 오버랩되는 특이한 형태의 '보리 마을' 집들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다음 글은 <12. 교황은 떠나고 남은 와인과 연극, 아비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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