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0. 다시 한번 더? 오~ 노~
솔직히 말하면, 과거 1년 이내의 어느 시점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그 시간과 질펀하게 엉켜 놀았고, 다시 되돌린다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이 없어요. 더 잘한다고 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회사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을 때 TWO take에 끝내버렸습니다. 반복을 통한 품질의 향상이 제 주관적인 만족도를 크게 끌어올리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어차피 적당히 해 낼 수 있으면 만족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에 어디 완벽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그 자리에 끼어들어가 역할을 해 낸 것으로 만족합니다.
회귀물을 즐겨 보지만, 실제로 인생을 N회차 살아야 한다면 난감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인생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한 번으로 족해요. 태어난 김에 열심히 살고 있기는 하지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편했을 수도 있겠죠.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목적 없이 태어났습니다. 아무도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나버렸지요. 하이데거는 우리의 상황을 내던져짐(피투)라고 부릅니다. 내던져진 인간은 그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고, 의미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던짐(기투)을 통해서요.
소설 데미안에서는, “인간은 모두 인간이 아니다. 원숭이로 머무는 사람이 있고, 벌레로 전락하는 사람이 있다.” 고 합니다. 이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다움을 아느냐 모르느냐, 나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던졌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어요. 의미를 선택하지 않은 자는 인간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매 순간 세상을 향해 자신을 능동적으로 던져야 하기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입니다. 니체는 하늘 높이 주사위를 던지며 “그래도 다시 한번 더!”하고 외칩니다. 그래봤자 1에서 6까지 숫자 중에 하나가 나올 것을 알지만, 무한회귀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돌아버린 것인지, 아무튼 신나게 외쳐요.
1과 6 사이, 그 제한된 가능성 속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것이 지독히 무료할 것도 같아요. 하지만, 던져진 인간은 “다시 한번 더!”를 외칠 수밖에 없고, 이왕이면 신명 나게 외쳐도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문득 피가 끓어오릅니다. 이렇게 미쳐가는지도 모릅니다.
“자! 이번엔 뭐가 나올 거냐, 이 무의미하고 무질서한 세상아! 뭐가 나오든 내 생명력을 태워 충분히 즐겨주겠노라!”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래요. 미래만도 충분히 아득합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