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월
출장을 다녀와서 유난히 피곤하고 무기력해졌다. 저주에 걸린것처럼, 의욕이라는 것이 제대로 묶어놓지 않은 실타래처럼 스스륵 풀어졌다. 아직 적응이 덜 끝난 1년차, 이 시즌 즈음에 무슨일을 해야할지 막연해서 그랬을수도 있다. 영어로 일하는 환경에서 오는 피로도가 쌓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무기력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꽃이 피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벚꽃, 철쭉, 창포가 꽃을 피웠고, 흩날렸다. 바닥에는 토끼풀이 돋아났고, 작은 국화친구들이 소박하게 흐드러졌다. 나뭇잎이 여기저기서 돋아나 헐벗어 부끄러워하던 앙상한 가지를 가려주었다. 측백과 향나무, 미루나무 잎을 헤아리며 걸었다.
이렇게 돌아보니, 무엇이 무기력의 이유였는지 더욱 모르겠다. 과연 내가 무기력했었는지조차 의문스러워진다. 지어낸 불행을 곱씹고 있는 건 아닌가? 5월은 그 나름으로 찬란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런대로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지 않았던가? 그만하면 괜찮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