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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May 19. 2019

10일간의 사건파일

튀니지

“혹시 튀니지 가보셨어요?”

튀니지에 가기 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었어.

조금의 정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요.”

“그럼 혹시 튀니지에 가볼 생각은 있어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 또한 “아니요.”

어디에 있는 건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사람들이 모르는 곳.

그리고 그가 가보지 않은 곳.

그 호기심이 나를 튀니지에 데려다 놨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난감했어.

새벽에 도착한 데다 호스텔까지 찾아가는 방법도 몰랐거든.

하필 호스텔 위치가 메디나의 깊숙한 곳에 있었어.

우선 호스텔로 가는 방법을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캡처를 해두었어.

그리곤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 위해서 공항 구석에 바닥에서 잠을 청했어.

최대한 노숙자처럼 보이게 하고서 말이야.

그래야 날 안 털어갈 테니까.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는 엄청 후진 유럽 같은 느낌이 들었어.

‘북아프리카의 파리’라고 불리는 튀니스.

옛 프랑스의 모습을 닮아있는 거리와 여기저기 적혀있는 프랑스어들은 이 곳이 오랜 시간 프랑스의 식민지였음을 알게 해 주었어.

흥미로운 점이 많아서 인터넷에 튀니지의 역사를 찾아보기도 했어.

알고 봤더니 한니발 장군과 코끼리 부대, 카르타고의 역사가 묻어있는 곳이었어.

여행하며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기도 해.

평소 좋아하는 역사를 여행하며 만나는 기분이란.

[튀니스] 카르타고 유적지에서.

미로처럼 어지러운 메디나를 골목골목 알게 될 만큼  거닐고,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친해져 함께 밥을 먹게 되고,

아프리카의 루브르라고 불리는 바르도 박물관에서 IS의 총격 테러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가까운 근교, ‘아프리카의 그리스’라고 불리는 [시디부 사이드]에 가기도 하고,

택시를 타고 카르타고의 흔적을 좇아다니기도 했어.

언젠가 여행을 하며 튀니지에 대해 궁금한 점을 가지고 있거나, 튀니지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내 이런 경험들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발자국을 남겼어.


내가 한창 튀니스를 여행할 무렵, 그는 포르투갈에서의 일이 너무 바빠진 탓에 연락이 잘 안 되곤 했어.

그와의 연락에 신경을 쓰다 보니 짜증내고 투정 부리는 일이 많아졌어.

내가 무언가에 열심히고, 열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당장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여행에 집중하기로 했어.

나도 그처럼 어드벤처스러운 여행이 하고 싶었어.

내가 이야기 많은 여행을 하면 그도 뿌듯해할 거라고 생각했어.

[시디부사이드] 아프리카의 산토리니라고 불린다고 한다.

수스로 향하는 루아지(튀니지의 이동수단으로 미니밴이다. 인원이 차야 출발한다.)를 타기 위해 스테이션으로 갔어.

기다려도 내 차례는 오지 않고, 저 앞에서 새치기의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어.

한숨을 쉬는 찰나 어떤 현지인이 말을 걸어왔어.

“너 어디 나라 사람이야? 혼자 여행 왔어? 어디로 가는데?”

“나는 한국사람이야. 수스로 가려고.”

“아마 오늘은 타기 힘들 거야. 이렇게 계속 기다리다가는 하루가 갈걸?”

“으아.. 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

“내 친구가 오늘 함마메트로 가는데 같이 갈래? 거기서 수스행 루아지 타는 게 더 빠를 거야.”

“아니야:) 괜찮아! 고마워.”

“같이 가자! 차로 가면 함마메트까지도 금방이야!”

“음.. 그래 좋아!”

[튀니스] 혼돈의 루아지 스테이션. 새치기의 새치기의 새치기를 보았는가.

현지인 친구 아민과 아민의 친구 차를 얻어 타고 함마메트에 갔어.

아민은 나를 루아지 스테이션에 데려다주고 좋은 여행을 하라며 인사를 해줬어.

좁아터진 루아지에 올라 가방을 끌어안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이번에도 누군가 말을 걸어왔어.

예쁘게 생긴 여자의 이름은 ‘두하’로 스팍스에 있는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어.

결혼을 앞두고 있는 두하는 동양인인 나를 매우 반가워하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어.

수스에 도착해 숙소로 찾아가려는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자 함께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거리로 데려다 주기도 했어.

현지인의 친절함에 고마움과 감동이 밀려왔어.

아, 나 여행 진짜 제대로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


두하를 그냥 보내기 너무 아쉽고 미안해서 함께 카페로 갔어.

미지근한 오렌지 주스 두 잔을 시키고 한참을 수다를 떨었어.

이제 갓 찍었다는 청첩장을 기념품이라며 내 손에 쥐어주고서야 헤어졌어.

하루 만에 현지인 친구 두 명을 사귄 이 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꽤 즐거웠나 봐.

잊고 있던 폰을 꺼내자 그로부터 카톡과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있었어.

[왼쪽 사진은 아민, 오른쪽 사진은 두하] 나를 도와 준 고마운 현지인 친구들. 아직도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낸다.

“아무리 북아프리카라지만 거기도 아프리카야! 어떻게 남의 차를 얻어 타고 갈 생각을 해?”

이걸 시작으로.

“중간중간 연락을 해놔야지. 납치당한 줄 알았잖아.”

그의 걱정 어린 말에는 화가 섞여있었어.

“앞으로 어딜 가든 다 말하고 다녀. 잘 말하고 다니다가 왜 오늘은 말을 안 하고 가. 뭔 일 생기면 어떡할 거야. 어디 있는지도 모를 텐데.”

바쁜 그의 관심을 이렇게 받는 건 잘못된 거지만 기분은 좋았어.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의 핀잔에 나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를 깨달았어.

참 사랑인 거지.


수스는 유럽인들이 휴양을 즐기러 오기로 유명한 곳이야.

그래서 밥을 먹으러 가도, 메디나를 구경하러 가도 온통 가족 단위로 온 여행자들 뿐이었어.

아아 이런, 여기서도 쓸쓸함을 맛보게 되는 건가.

혼자인 게 어울리는 곳에 다녀와야지 하는 심정으로 루아지를 타고 가까운 근교인 엘젬으로 갔어.

엘젬은 영화 ’ 글레디에이터’의 촬영지이기도 한 원형경기장이 있는 곳이었어.

볼 게 그거 하나뿐이라고 들어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아주 딱이었어.

예상대로 그거 하나 보러 오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어느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온 무리가 다였어.

그래도 혼자 있으면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삼각대를 폈을 텐데 그 수고를 덜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수스] 혼자서 삼각대를 놓고 찍는다는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돌아온 수스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갔어.

군사와 종교적인 시설물로 그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리바트’였어.

리바트의 꼭대기에 오르면 수스의 바다와 메디나를 한눈에 볼 수 있었어.

작은 그늘이 진 이 꼭대기는 무더운 날씨에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어.

무엇보다도 탁 트인 전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져서 좋았어.

가만 앉아서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코끝에 비릿한 바다내음이 불어왔어.

아, 좋다. 좋아.

[수스] 리바트의 탑 꼭대기에서 수스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숙소 앞 대로를 건너가면 있는 레스토랑에 갔어.

튀니지도 이슬람 문화이기 때문에 술을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데 이 레스토랑에는 있었거든.

하루의 마무리를 맥주와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마침 러시아 월드컵의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어서 한적한 레스토랑 안에도 활기가 넘쳤어.

흥이 난 나는 맥주를 마셨어.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왔어.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혼자 여행 왔어? 우리랑 같이 마시자!”

이미 흥이 나버린 나는 그가 내게 해왔던 주의를 무심코 잊어버렸어.

그는 내게 어딜 가든 남이 주는 술은 마시지 말라고 했었어.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은 듣지 않고 낯선 현지인이 주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셔버렸지.


어느덧 해가 져서 집에 가려고 하자 현지인 친구들은 나를 보내주지 않았어.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순간 머리가 핑- 돌더니 눈 앞이 깜깜한 거야.

불행 중 다행으로 쓰러지면서 화장실 벽에 머리를 쾅 부딪히고 정신을 차렸어.

위기감이 온몸을 사로잡았고 난 그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뛰어서 숙소로 도망쳤어.

도착하자마자 문을 잠그고 불도 켜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어.

새벽에 깨어 다급히 그에게 전화를 했어.

엉엉 울면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증세를 말했어.

온몸이 아프고 극도로 배가 고프고, 물을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난다고.

그는 내게 그들이 술에 뭔가를 탄 모양이라고 말했어.

화가 잔뜩 났음에도 곁에 있어주지 못해 속상한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어.

[튀니스] 숙소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 들이었다.

다음날 몸살에 걸린 듯 끙끙 앓아누웠어.

몸도 아프지만 무서워서 방에서 나가지도 못한 채 가만 누워있었어.

분명 재미있었고, 좋은 친구들도 만난 곳이지만 한 번의 무서운 일이 어서 빨리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어.

튀니지 다음으로 가려고 했던 나라인 이집트행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한 정리를 했어.

큰일 없이 잘 도망쳐서 다행이라고.

일찍이 경험해서 다행이라고.

앞으로 더 주의하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는 개뿔.

무서운 마음도 마음이지만 경계심 없던 내 행동에 화가 났어.

그동안 친절한 현지인들만 만나왔어서 내 행동이 안일했음을, 조심성이 없었음을 몰랐던 거야.


여러 사건이 있었던 튀니지 여행.

덕분에 술 마시며 안주거리처럼 나눌 이야기가 생겼다고 생각하려 해.

다음 여행을 하기에 자신감이 확 줄어들었지만.

어쩌겠어.

당장 그가 있는 포르투갈로 돌아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는걸.

포르투갈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여행지인 이집트.


남은 여행을 야무지게 즐겨보자 다짐하며 이집트 카이로행 비행기에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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