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면씨 May 21. 2019

역사 속으로

이집트

후우-

튀니지에서의 여행이 너무 힘들었나 봐.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어.

좋아하는 이야기로 가득한 이집트에 왔는데도 신이 나질 않았어.

공항에서 호스텔로 가는 길에 역시나 너도 나도 따라붙었어.

“두 유 워너 딱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우버를 불러 호스텔로 갔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무질서한 풍경들.

이미 예상한 모습이라 놀랍지도 않았어.

[시타델] 성채라는 뜻의 시타델에서는 카이로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바로 다합으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피라미드는 봐야지 싶었어.

혼자 피라미드를 보러 가면 미친 듯이 달라붙는다는 삐끼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을게 뻔했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모마’라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투어가 있었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투어를 신청했어.

현지인만큼 이집트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야.

아침 일찍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니 픽업 차량이 왔어.

가이드 모마는 내게 인사했어.

“안녕하세요!”

[멤피스 박물관] 람세스 2세는 애처가였다고 한다.

내가 신청한 투어는 피라미드 투어였어.

정말 딱 피라미드만 보고 다합으로 가려했거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일 거야.

하긴 개수만 해도 엄청나게 많아서 그중 가장 유명한 것만 알고 있는 게 당연할 수도 있어.

투어의 시작은 카이로 남부에 위치한 ' 사카라 피라미드’였어.

가이드인 모마는 “만약 피라미드를 하나만 봐야 한다면 저는 사카라 피라미드를 볼 거예요!”라고 말할 만큼 볼거리가 많고, 훼손이 많이 되지 않은 피라미드였어.

기자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이 피라미드는 내부에 들어가면 그 진가를 발휘했어.

흥이 떨어진 여행에 좋아하는 역사와 신화 이야기가 나오자 내 눈은 솜사탕을 손에 든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어.

[사카라 피라미드] 몇천년의 세월에도 색이 바래지 않은 모습.

모마가 대여한 미니버스를 타고 멤피스 박물관을 거쳐 기자 피라미드로 갔어.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것처럼 삐끼들이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있었어.

투어를 하길 천만다행이었지.

나 혼자였으면 멘붕에 빠지고도 남았을 거야.

기자 피라미드는 크기만 크고 볼 것은 딱히 없었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스핑크스와 입을 맞추고 투어가 끝이 났어.

에어컨이 빵빵한 미니버스와 시원한 물, 간식으로 투어자들에게 사준 달콤한 파파야 주스.

“아, 모마 진짜 착해요. 이렇게 장사하면 남는 게 없어.”

라고 말한 모마가 마음에 들었어.

한국어가 유창한 것도 있지만 센스가 있고, 누구보다 역사에 빠삭했거든.

그래서 다음날 있다는 시티투어도 덥석 예약해버렸어.

[카이로 박물관] 땅만 파도 나오는게 이런거라니..

시티투어는 이집트 박물관에서부터 시작했어.

엄청난 유물들이 정말 많이 진열되어있었는데 그 양이 30퍼센트 정도고 나머지 70퍼센트는 박물관 창고에 있다고 했어.

그래서 전시되지 못한 유물들을 진열할 수 있게 기자 피라미드 근처에 커다란 박물관을 짓고 있다고 했어.

아직도 땅을 파면 유물들이 발굴이 돼서 땅 파는 거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더니..

많은 유물들과 역사와 신화가 이집트를 먹여 살리는구나 라고 생각했어.

고대 이집트인들이 맥주를 마셨고, 그들의 예술과 기술은 지금의 것과 다르지 않았어.

아니 어쩌면 더 앞서 갔을 수도 있어.

투탕카멘의 저주로 유명한 소년왕 투탕카멘은 아시아인의 피가 섞인 혼혈왕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영화에서나 보던 미라를 원 없이 보기도 했지.

피라미드만 보고 카이로를 떠나려 했지만 막상 투어를 들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

어릴 시절에 읽던 책에서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알게 되다니.

[기자 피라미드] 남들과는 다르게 사진 찍고 싶었던 나는 피라미드로 똥침을 놨다.

박물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올드 카이로로 이동했어.

뉴카이로엔 부자들이 살고 있고 올드 카이로엔 의미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었어.

예수 피난 교회와 공중에 떠있는 공중 교회 등 기독교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 곳들이었어.

올드 카이로를 둘러보고 시타델을 들렀다가 쓰레기 마을로 향했어.

사실 시티투어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거든.

카이로 시내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분류해서 부를 축적한다는 쓰레기 마을은 들어서는 순간 차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겨운 쓰레기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어.

쓰레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인들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인들과는 달리 쓰레기 마을 안에서 돼지를 키워서 먹는다고 했어.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히잡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여행을 하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는 건 당연해.

하지만 세세하게 알게 되었을 때 여행 중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것 같아.

[기자 피라미드] 교과서에서 보던 피라미드를 본 소감은. "씨바. 졸라 덥네.."

이틀 연속 역사 속에서 즐겁게 헤엄친 나는 진짜 바다에서 헤엄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어.

꿈에 그리던 다합으로 가기 위해서였지.

다합까지는 8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중간중간 버스에서 내려 검문을 해야 해서 10시간이 걸리고는 한다 그랬어.

시나이 반도 자체가 “외교부 해외안전 여행부” 사이트에 검은색으로 표기, 즉 여행금지 구역이었기 때문에 잔뜩 긴장이 되었어.

무슨 일이야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했던 나.

하지만 이집트에 오기 전에 튀니지에서 큰 코를 다쳤기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경계하고 주의해야 했어.

[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스핑크스랑 뽀뽀도 했으니 내 흔적 제대로 남겼다.

밤 버스였기 때문에 버스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서 쿨쿨 잠에 빠져들었어.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첫 번째 검문이 있었어.

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들이 승객들을 버스에서 내리게 했어.

그리고는 짐칸에 있던 가방을 꺼내고 가방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줬어.

그리고 여권을 보여줬지.

참 다행인 게 차만 타면 자는 버릇이 있었던 덕분에 좁은 버스가 불편한 줄도 몰랐어.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짐 검사와 여권 검사가 반복됐어.

총 세 번의 검문이 있었어.

선잠에 빠져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눈을 떴어.


아침 6시가 좀 안 된 시간,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을 때 다합 땅을 밟았어.


매거진의 이전글 10일간의 사건파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