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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May 23. 2019

자리잡기

다합

처음 만난 날 그가 말했어.

“이집트에는 다합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물가도 싸고, 홍해 바다에서 액티비티도 즐기고, 시간 보내기 엄청 좋거든요.”

(기면씨의 기록 - “먼지 묻은 버킷리스트와 만남” https://brunch.co.kr/@cielita/5 참조)

이 말은 들은 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겠다 다짐한 곳이었어.

분명 내가 좋아하게 될 거라는 확신도 들었었던 곳.

그가 알려준 루트를 거쳐 드디어 다합에 도착했어.

다합으로 향하는 날 그는 내게 말했어.

“드디어 가는구나. 다합.”


다합에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해둔 사람이 있었어.

사실 서로 몰랐던 사이인 데다 SNS로 연락을 해 알게 된 인연이었어.

내가 도착한 당일 잘 곳이 없어서 신세를 지게 될 가현 언니였어.

이제 막 해가 뜨는 이른 아침에 도착한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언니네 집으로 향했어.

알려준 주소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어느 집 앞에 사람이 나와 있었어.

설마 하는 마음은 왜 늘 틀리지 않는지.

가현 언니가 남자 친구인 지훈오빠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어느 누가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들이겠어.

나중에 물어보니 여기 다합에선 다들 그렇게 한다고 언니가 말해줬는데 그 말에 공감하기까지 며칠도 걸리지 않았어.

집 옥상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건 옆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언니와 오빠는 나를 집으로 안내했어.

일층에는 언니 오빠가 쓰고, 이층에는 프리다이빙 강습을 위한 공간이라고.

안쪽에 방이 있는데 침대 두 개 중 하나를 쓰라고 말이야.

집값에 전기세가 포함되어 있으니 에어컨을 마음껏 쓰라는 말도 잊지 않았어.

간단히 소개를 해준 뒤 “피곤할 텐데 어서 쉬어요! 푹 자요:)”라고 말하곤 자리를 비켜주었어.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고 당장 집부터 알아봐야지 그리고…

까지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어.

한국사람이 있는 안전한 집이라고 생각하니 꿀잠을 잘 수 있었어.


느지막이 일어나 ‘라이트 하우스’ 앞바다로 갔어.

처음 마주한 홍해 바다는 맑디 맑았고, 눈이 시리게 푸르렀어.

물을 무서워하는 나도 어서 빨리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지.

집을 찾아보기 전에 스쿠버다이빙 업체를 찾아보기 시작했어.

다합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거든.

한국인 강사가 있고 가격이 저렴한 업체를 찾아서 강의를 등록을 했어.

그때 가현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어.

“오늘 집에서 친한 사람들이랑 닭백숙 해 먹기로 했는데 같이 먹을래요?”

헐.. 닭백숙이라니.

두말 않고 콜! 할 수밖에.

[홍해] 이 바다를 보고 뛰어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집에 가니 가현 언니가 마늘을 손질하고 있었어.

재빨리 옆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언니를 도왔어.

집에는 언니 오빠의 친지들인 프리다이버 몇 분들이 있었고, 프리 다이빙 대회 영상을 보고 있었어.

공기통이나 이런 장비 없이 숨을 참는다고?

세상에.. 보기만 해도 무섭고 위험해 보였어.

나는 영상을 보며 말을 나누는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보았어.

내가 보기에 무섭고 위험해 보이는 저 스포츠를 저분들은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즐기고 계시는구나.

그들의 눈이 빛나는 것을 둘째고, 그들의 모습이 빛이 나 보였어.

좋아하는 것을 얘기할 때 사람은 빛이 나는구나.

나도 그의 얘기를 할 때면 빛이 나 보이려나:)


내가 한 음식이 아닌, 남이 해 준 음식.

내가 해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

그런 음식을 이집트에서 먹었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작고 좁은 상에 몸을 부대끼고 앉아서.

포르투갈을 떠난 뒤로 처음 느껴보는 안정감이었어.

한 끼 먹는 밥에 배부른 게 아니라 같은 한국인의 정에 배가 불렀어.

아, 말은 이렇게 해도 밥은 야무지게 양껏 먹었지.

매일 무더운 날씨에 '일일 일맥'은 필수였다.

집을 구해야 하는 미션이 남았을 때 가현 언니가 말을 건넸어.

“집 구했어요? 요즘 집값이 많이 올라서 비쌀 거예요.

원래는 장기로 묵을 사람 말고 단기로 묵을 사람을 구하려 했는데.

현이 씨가 여기 계속 있고 싶으면 계속 있어요.

현이 씨면 우린 좋아요:)”

사실 다른 집을 구할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하루 만에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집이 좋아져서 눌러앉고 싶었거든.

먼저 말을 꺼내 준 언니가 너무 고마웠어.

가장 걱정이 많았던 집 구하기를 이렇게 쉽게 클리어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첫날 묵은 집이 다합을 떠나는 날까지 살게 될 집이 될 줄도 몰랐지.


이 곳에 도착해서 ‘완’이에게 연락을 했어.

“완아 잘 지내니?

난 지금 이집트 다합에 있어.

여긴 네가 좋아하는 거로 가득한 천국이야.

술 있지, 바다 있지, 물가 싸지.

여기 엄청 좋아! 너무 재미있어!”

그게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완이가 생각이 난 이유였어.

“야 기면! 너 심심하니까 나한테 오라고 하는 거지?”

라고 대답한 완이는 정확히 9일 후에 다합에 도착했어.

완이가 이 곳 다합에서 반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건 안 비밀.

흑화한 기면씨.

나와는 반대로 제이는 물을 아주 좋아했어.

어디든 물만 보면 수영이나 다이빙을 하고 싶어 했지.

그런 그와 함께 물속에서 데이트를 하고팠어.

그가 좋아하는걸 나도 함께 즐기고 좋아하고 싶었거든.

집도 구했고, 스쿠버다이빙 자격 과정도 수강 등록했고,

이제 물과 친해지는 일만 남았어.


물을 무서워하는 나의 [Under the Sea] 라이프가 시작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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