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나갈 즈음 텅빈 병실로 올라와, 짐을 챙기고 남편과 교대를 했다. 집으로 오니 홈 스위트 홈을 외치던, 늘 좋기만 했던 집이 적막하고 스산했다. 남편이 혼자 있는 내내 집안을 한꺼풀 벗겨낸 거 마냥 청소만 했다더니 왜 그런줄 잘 알겠다. 몸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쓸데 없는 생각으로 괴로웠을 터라 그랬을 거였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괴로웠지만 딱히 연락할 곳이 없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리긴 했지만 자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하지만 그때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진심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내가 속절없이 무너질때 마다 나를 잡아줬던 엄마 아빠, 혼자 있는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보내준 동생, 휴대폰 속의 내목소리만 듣고도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아채고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위로해준 한참이나 어린 후배, 두려웠던 우리에게 의학적 조언과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던, 친구의 남편이자 우리집 주치의이신 정원장님 그리고 소중한 친구..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같이 견뎌준 아이 아빠.. 나와 남편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해졌고 끈끈해졌으며 서로가 더욱 소중해졌다.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변한 건 없다. 아이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경과는 좋았으며 그 힘든 과정을 여린 몸으로 잘 견뎠다.
운이 나빠서 병에 걸리고 수술을 한거였지만, 그 과정 속에서는 수많은 행운이 존재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잡힌 수술일정이나 잘 돌봐줬던 의료진, 같이 아파해주고 울어주던 주변 사람들...그리고 나는 휴직중이어서 온전히 아이를 케어할 수 있었던 것, 코로나때라서아이가 학교를 많이 가지 않아도 되니 휴식과 재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리고 정말 운명적으로 6학년 때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과 친구들의 따뜻한 보호 아래 1년을 보냈던 것도 기적같았다. 돌이켜 보면, 나빴지만 또 나쁘지만은 않았다. 누구나의 인생이 그러하듯 말이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절망적이었던 날을 뒤로 하고 지금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 언제 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다. 물론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겠지만.
혹시라도 같은 수술을 고민하는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술 이후의 전반적인 과정은 따로 기록해 두려 한다. 다만 수술과 이후 병원에서 케어는 남편이 담당했기에, 나중에 남편의 기억을 빌리기로 했다.
아이가 잘자라, 꽃가마 태워줄거라고 걱정말라고 말하던 그녀의 위로가 얼마나 컸는지...그녀가 보내준 퇴원 기념 꽃다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