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여유 부리고 싶은 주말
커피를 잘 못 마시는 사람이 됐지만
여유가 있고 그 여유를 커피로 부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난주 속초에서 커피 맛집을 못 찾은 게 후회도 되고 해서
이번 주말엔 동네산책을 하며 커피 맛집을 찾아 여유를 부리고 싶다.
목적지는 두어 달 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걷다 발견한 커피숍.
건물의 1층과 2층을 전부 사용하는 규모가 꽤 큰 곳으로,
사람이 붐비는 걸 보니 커피도 맛있을 것 같은 촉이 왔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지만 손목에 찬 핏빗에서 만보의 축하를 받기 위해
뚜벅뚜벅 오늘도 걷는다.
헌데 아무리 걸어도 머릿속에 저장해둔 매장이 안 나온다.
대로변이라 길을 헤맬 위치도 아니고...
아무래도 운영상 어려움으로 접었지 싶다.
커피숍 착석 금지 여파가 이곳까지 미칠 줄이야.
그러고 보니 항상 손님들로 붐비던 1층 매장들이
떼어낸 간판들로 휑한 곳이 제법 보인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점심이나 먹어야겠다.
마침 가로로 길게 난 창문 너머 따뜻한 느낌의 가게가 보여 입장.
친절한 직원과 짙은색 나무로 된 테이블과 좌석이 맘에 든다.
헌데 맛은...
카레는 맛이 너무 쎄고 반찬으로 준 상추겉절이는 양념 폭탄.
차라리 우동을 먹을걸 그랬나 생각했는데...
옆 옆 자리 손님이 먹고 간 우동그릇을 보니 음식을 많이 남겼다.
아 이곳은 분위기 맛집이구나.
아니면 몇 주전 망원동 커피집처럼
메인 셰프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거나.
주말엔 먹거리에 큰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래도 배는 부르다.
걸을 힘이 생겨 집 앞 상가로 다시 출발.
만약, 생각해 둔 커피숍을 못 찾으면
플랜비로 생각해 둔 상가 커피숍과 빵집이 있다.
어제 들른 상가에서 잠깐 본 결과,
애견샵과 세탁소였던 가게들이
빵집과 커피숍으로 바뀌었다.(커피숍은 전에도 많았는데 더더 많아진 듯.)
거기 가서 맛있는 커피와 스콘을 사야지.
먼저 들른 동네 빵집
작은 가게여서인지 빵들이 많이 빠졌다.
스콘 하나와 크랜베리 호두빵 하나를 계산하고
스무 발자국쯤 앞에 있는 커피숍으로 고고.(상가의 편리함)
핸드드립을 손흘림으로, 순 우리말 표현을 써서 느낌이 좋다.
한국식 커피 추출이라는 독특한 방법의 커피를 파는 곳.
원두는 농산물인 커피 생콩(씨앗)을 볶은, 매우 산패가 잘 되는 식품으로
야채, 생선, 두부처럼 소량씩 드실 만큼 구매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잔의 커피에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칙과 신념 없는 추출방법, 로스팅한 지 오래된 원두는 여러분의 행복지수를 감소시킵니다.
선유도커피는 여러분 곁에서 늘 함께 하겠습니다.
오호~뭔가 철학을 가진 가게를 찾은 느낌.
커피 한 잔에 진심을 담은 느낌적인 느낌.
사장님이 커피를 담는 동안 팸플릿을 읽는다.(글씨로 커피를 알아가는 타입)
커피 원액을 희석해 마시는 방식이라 더치커피와 혼동할 수 있지만
추출조건과 방식이 전혀 다르고, 농도가 진해서 라테나 베이킹에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시음으로 3단계(총 6단계) 커피를 내주신다.
부드러운 향에 뒷맛이 텁텁하지 않고 산뜻하다.
평소 노래 부르던 플랫화이트는 못 먹었지만
손흘림커피 맛집을 하나 찾아서 기분 좋다.
가져간 텀블러에 2단계(더 부드러운 맛으로) 커피를 가득 담으니 왠지 뿌듯해진다.
사장님의 계획(?)대로 한잔의 커피에 행복해 하는 손님이 됐다고나 할까.
집에 와서 먹어 본 커피는 딱 내 스타일.
기대감 안고 사온 스콘은 별로.
대신 크랜베리 호두 빵이 겉바속촉으로 맛있다.
오늘 짧은 동네산책을 한 소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나는 내 동네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사람이나 가게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함을 배운 날이기도 하고.
선유도커피집처럼 동네 가게가 잘 되려면
자신만의 음식 철학과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날이기도 하다.
요즘 내가 자주 하는 고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에 대한 생각.
그 생각에 오늘 동네산책이 좋은 관점을 제시해 주어 고마운 하루다.
오늘은 동네 산책을 통해
주말의 여유를 커피로 부리고 관점도 얻은 날.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