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인의 집은 어디인가?
/새벽
SRT 타러 수서역 가는 길이다.
너무 늦게 나왔나?
슬슬 걱정된다.
출발 시간 7시 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몇 달 전 SRT로 서울 오는 지인 픽업을 갔을 때
플랫폼이 너무 헷갈려서 방향을 잃고
헐레벌떡 뛰어다닌 기억이 있어 왠지 불안하다.
그날은 마중이라 괜찮았지만
오늘은 늦으면 안 돼!
/2-4
생전 처음 타는 수인 분당선 지하철
2호선에서 환승하는 구간이 짧아 좋다.
이 열차만 타면 일단 안심.
가장 짧은 환승구간이라고 앱이 알려준 대로
2-4번 칸에 탑승.
등산객들이 제법 되고
토요일이지만 출근하는 듯한 분들로
이른 시간인데도 붐빈다.
마음이 놓이니 비로소 보이는 주변.
/17호차
출발 3분 전에 자리에 앉았다.
역무원에게 묻고 확인하면서
1번 플랫폼부터 시작해
17칸이나 걷느라 진이 날 때쯤 도착.
엄청난 길이의 열차다!
7시 정시 출발과 함께 기장님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 여러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비행기를 탄 듯 설렌다.
/7:50
설렘도 잠시
책을 꺼내 읽다 잠이 들었는데 대전에 도착했다.
50분도 안 걸려 도착이라니
집에서 사무실 가는 시간이랑 똑같네.
대전이 몹시 가깝게 느껴진다.
붐비는 역을 나와 성심당 본점을 향해 걷기로 한다.
시장 골목길에 들어서니
익숙한 한약 다리는 냄새가 짙게 난다.
한약 다리는 건강원, 한의원이 많다.
뭘까? 왜 이곳엔 한의원이 밀집해있지?
궁금해진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필리핀 동네에서 풍기던 세탁비누 냄새가 난다.
십오육 전 맡았던 냄새를
기억하는 내 기억력이 신기하고
세탁소도 안 보이는 골목 어디에서
무슨 연유로 이 냄새가 나는지 희한하다.
/성심당 본점
직원들은 빵 세팅하느라 분주하다.
배민 앱에 택배까지...
제빵 대기업 같다.
자차로 출발한 지인들을 기다릴 겸
2층 카페로 올라갔다.
“카페는 1시간만 이용하실 수 있어요.”
그렇게 얘길 안 해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 볼륨이 너무 커서
얼른 나가라고 등 떠미는 듯하다.
대전도 번화한 도시의 습성을 고스란히 지녔구나.
/오전
오늘의 목적(인터뷰)을 위한 질문들을 적어보고
책을 읽다 보니 지인들이 도착했다.
항상 서울서만 보던 얼굴을
대전에서 만나니 신기하다.
/마침내 ‘다다르다’
인터뷰는 두 번째 이유였고
원래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다다르다 서점 방문이었다.
일층은 카페
이층은 서점
아늑한 분위기의 서점에 올라가니
인스타 라방에서 봤던 분들이 카운터에 계신다.
연예인 만난 듯 신기하다. 오와.
여기 오려고 대전에 왔다고 하니
그분들도 나를 신기해하신다.
(우린 서로 신기한 사이)
절판됐다는 이상은 씨의 책 한 권과
서울서 못 샀던 연말정산을 구입하고
수세미까지 사들고 나오니 왠지 모를 뿌듯함.
/눈물과 웃음
두 번째 목적인 대전 사는 지인 인터뷰.
내 지인의 집은 어디인가(가제)를 주제로
오늘의 인터뷰이와 함께 카페로 향한 우리.
짧게 끝내려 했는데 얘기 나누며
함께 울고 웃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종이인형처럼 가냘프지만 열정적인 지인.
고민과 삶을 얘기하는 그녀가 참 예뻐 보인다.
반짝이는 빛을 가진 지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고 소중하다 느낀다.
/다시 서울로
이야기가 넘쳐서 결국 5시 열차를 취소하고
8:39 열차를 탔다.
지인을 만난다는 핑계로 방문한 대전
(정확히는 대전구 은행동)
역시나 사람들 사는 도시는 비슷하다 느끼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오늘 대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제 다시 서울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몰랐는데...
나는 여행으로 힘이 나는 타입인가 보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