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란 신동의 금의환향

침묵을 깨고 선 최고의 무대_김용빈의 애인

by 유투리

너무 일찍 빛나버린 아이들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정이는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 하나로 ‘소년등과’를 꼽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하는 건, 인생의 쓴맛을 모르기에 나태해지고 교만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 말이 더 깊게 와닿았다. 우린 너무 쉽게 어린 아이들의 재능을 띄우고, 소비하고, 경쟁에 내던진다. 뛰어난 연기력의 아역배우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일. 영재로 불리던 아이가 제 실력을 다 펼쳐보기도 전에 좌절하고 한국을 떠나는 일. 이 모든 게 ‘소년등과’의 불행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였을까.

김용빈의 <애인> 무대를 보는 내내 나는 그가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뎠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트롯신동으로 주목받았던 아이가, 그 관심과 기대를 끌어안고 여기까지 왔다.

출처: 김용빈 - 애인 ❤미스터트롯3 1화❤ TV CHOSUN 241219 방송

신동에서 침묵으로, 다시 무대로

김용빈은 신동 중에서도 특출났다. 청소년 남인수가요제 대상 수상으로 일찍이 데뷔했고,

명절 특집 방송엔 단골로 출연했다. 행사만 해도 1년에 290회를 넘겼다니, 그 시절 그 어린아이에게 쏟아졌을 관심과 기대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도 안 된다.

출처: 17년차 트로트 가수 김용빈의 트로트 신동시절 영상 KBS 050331 방송

혼자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간은 말 그대로 버텨야만 했던 시기였다. 몸도 마음도 자라나는 시절에 너무 많은 걸 감당해야 했던 그는, 결국 7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노래를 멈췄고, 엘리베이터조차 탈 수 없을 만큼 공황장애에 시달렸다고 했다.


<애인>, 잘 자란 청년의 애틋한 고백

그런 그가 30대 중반이 되어 미스터트롯3 무대에 섰다. 왜 이제야 나왔냐는 질문에 김용빈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미스터트롯 1, 2 시즌에 나온 분들이 잘 되는 걸 보면서 나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꾸밈없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어릴 적 신동의 순수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가 부른 태진아의〈애인〉은 마치 지난 시간을 되짚는 듯한 서정적이고 애틋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무대 의상, 표정, 감정선까지 단단하게 정리된 그 무대는 결승전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완성도 있었다.

이제와서 어떡해요 이미 사랑해버린걸
알아요 나도 알아요 맺지 못한다는 걸
조금만 시간을 줘요 내가 돌아설 수 있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절절한 미련을 그 나이에 맞게 풀어냈다. 태진아의 <애인>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버린 중년의 일탈이자 위험한 사랑 같다. 김용빈의 <애인>은 이별이 무엇인지 이제 막 알아가는 청년의 찬란한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건,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조급함이 아니었다. “나 잘 살아왔노라”는 단단한 인사였기에. 차분했고, 절제됐고, 완숙했다. 미스터클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급스러운 무대였다. 잘 자란 신동이 견디고 견딘 시간 끝에 영롱한 진주를 꺼내 보인거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옷을

지금도 많은 신동들이 TV에 모습을 드러낸다. 성인가수 못지 않은 현란한 꺾기 실력과 능수능란한 감정조절에 패널들과 대중은 환호한다. 그런데 잠시 뿐일 거다. 영원한 인기는 없다. 어린 아이일수록 텅 빈 가슴을 견디지 못할 거다. 그래서, 어른인 우리는 신동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신동은 실력자이기 이전에 '어린이'다. 아직 자라는 중인 사람, 어른들이 지켜줘야 할 사람이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옷을 입히기를, 아직 알지도 못하는 감정을 요구하며 과하게 칭송하지 말기를. 방송계 종사자들이 보고 있다면 감히 부탁드린다.


김용빈은 다행히 그 시간을 견뎠고, 다시 노래했다. 무대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청년 김용빈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렇게 미스터트롯3 최종 진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가 쓴 왕관의 무게가 이번엔 너무 무겁지 않기를,

누구보다 신명나게 행복하게 노래하는 가수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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