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오디션 서사의 끝판왕_박서진의 흥타령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가 있다.
잘하길 바라면서도, 너무 안쓰러워서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 나에게 박서진이 그렇다.
2020년, MBC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그는 끝내 하차했다.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장구의 신 답게 신명나는 흥을 뽐내던 박서진.
무대를 내려오면 스스로를 옭아매던 모습이 참 아렸다.
“또 이렇게 나가면 내가 욕먹겠지?”라며 고백하던 그 말, 기라성 같은 선배들 틈에서 버티려 애쓰다 결국 터뜨린 눈물, 그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일까. 그가 다시 오디션 무대에 설 때마다 나는 조용히 바라봤다.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노래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되니까.
2023년 <미스터트롯2> 박서진은 국민투표 1위라는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데스매치에서 안성훈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추가 합격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 순간 많은 팬들이 분노했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박서진은 담담했다.
“더 좋은 노래도 부르고, 시청자들과 얘기도 더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떨어져서 아쉬웠어요.”
그러면서도 갈라쇼 무대에는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초대해줘서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왔어요.”
이 무대가 마지막일지라도,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불안했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대는 그의 용기 그 자체였다.
'떠나는 임아'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절절히 토해냈다. 장구없어도, 목소리만으로 오롯이 그가 가진 내공을 뿜어냈다.
그건 어쩌면, 지난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자진 하차한 자신에게 주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역가왕2에서 박서진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장구.
그 무대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구나.
이번 시즌에는 신승태, 강문경 같은 강자들이 대거 출연했다. 뮤지컬, 국악, 정통 트로트까지.
도전자들의 스펙트럼은 넓고, 실력은 탄탄했다. 그 안에서 박서진은 단연 ‘가장 유명한 참가자’였다.
이름값은 무대 위에서 양날의 칼이다. 주목을 끌 수 있지만, 실망도 쉽게 안긴다.
그래서 솔직히 걱정됐다. 또다시 기대에 눌리지 않을까.
그런데 결승전에서 장구를 어깨에 멘 순간,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혔다.
신명나는 흥타령 한 곡으로 그는 그 자리를 압도해냈다.
가장 잘하는 걸 꺼냈구나, 장구와 흥.
신명나게 장구채를 구르고 때리며 긴장감을 날려버리는 모습.
탁월한 박자감으로 리듬과 호흡을 조절하는 능수능란함.
그 순간 알았다. 이번 진은 무조건 박서진이라고.
박서진은 한국형 오디션 서사의 정석이다.
사실 우리 사회가 열광하는 스토리는 정해져 있다.
천재보다 노력파, 타고난 스타보다 묵묵히 성장한 사람.
쉽게 얻은 성공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가족을 잃은 고통, 공황장애로 무대를 떠났던 시간, 선배가수에게 폭언을 들었던 아픔이 있었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의 자진 하차, <미스터트롯2>에서의 탈락,
그리고 <현역가왕2>에서 당당히 진을 차지하기까지.
그는 매번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으로 걸어왔다.
박서진의 팬덤이 고속버스를 대절해 전국을 따라다니며 그를 응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단지 노래 잘하는 가수만이 아니었다.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묵묵히
마지막 무대에서 그가 부른 ‘흥타령’의 한 소절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게 섰거라 모두 비켜라 물렀거라 세상 가짜들아
얼씨구 절씨구 놀아보세 흥겹게 흥겹게 즐겨보세
이게 바로 대한민국 흥타령
힘들고 지칠 때 흥타령을 불러주세요
진심 없이 포장된 스타가 넘치는 이 판에서,
박서진의 흥은 그 자체로 ‘진짜’였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결국 이겨낸 사람.
박서진은 지금, 가장 단단한 발걸음으로 국민가수라는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