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장례_강문경의 <망모>
울 엄마는 열아홉 살 때 울 아부지 잘못 만나
생선장사 꽈배기장사 안 해본 게 없었고
내가 초등학교 삼학년 때에 몹쓸 병에 시달리시다
한도 많고 꿈도 많았던 이 세상을 뜨셨네
희고도 흰, 맑은 소복을 입은 강문경이 첫 소절을 떼는 순간,
눈물이 왈칵났다.
노래에 깃든 어린 아이의 그 날이 그려져서다.
어떤 시보다도, 어떤 대사보다도 명료하게 아이 엄마의 삶이 그려졌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작된 고단한 인생,
꿈 많던 엄마가 세상을 뜬 날, 아이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너무나 따스하게 부르는 강문경의 목소리.
슬픈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마라는 위대한 존재가 헛되지 않았음을,
그 엄마를 기억하고 또 노래하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위로보다 따뜻한 사랑의 증명이 되기에.
우리 엄마 상여 나갈 때
동네 사람들 내게 했던 말
이놈아! 야 이 자슥아! 이제 그만 울 거라
너그 엄마는 맘이 고와서 틀림없이 천당 갔다
멀고 먼 길 편히 가시게 이젠 그만 울 거라”
노래의 두 번째 소절은 슬픔의 중심에 있던 아이를
마을이라는 품이 어떻게 감싸안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날, 아이에게 들려준 어른들의 말.
그 안엔 아이의 상처를 어떻게든 막아주고 싶었던
따뜻한 정이 담겨 있었다.
강문경은 이 대목을 낮고 인자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 순간, 그는 마치 마을 어귀에 앉아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동네 어른 같았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
엄마는 고운 사람이라 천국에 갔으니
너도 이제 울음을 그쳐야 한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
이 노래는 단지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가 아니라,
그 어머니의 빈자리를 품어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도,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버텨낸다.
어쩌면 그날, 울던 아이는 슬픔보다 위로를 더 오래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그 위로가 자양분이 되어, 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받은 그 따뜻함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낼 수 있는 어른.
많은 젊은 남자 트로트 가수들이 나훈아를 롤모델로 삼는다.
창법을 닮고, 스타일을 닮고, 무대에서의 기운을 닮으려 한다.
하지만 따라한다고 모두가 그처럼 될 수는 없다.
나훈아를 진짜 닮으려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원 오브 어 카인드’여야 한다.
강문경은 그런 가수다. 그의 음색은 진하고 개성 있다.
무엇보다, 곡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 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표현력은 놀라웠다.
곡의 핵심 메시지를 놓치지 않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대를 직조해냈다.
무대 후반, 곱고 예쁜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인 장면.
흰 천을 펼쳐 어머니의 넋을 보내는 연출.
그 모든 것이 말 없이 마음을 흔든다.
그는 단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영화 한 편을 이끄는 배우’ 같았다.
이처럼 트로트 무대가 단순히 노래로 끝나지 않고,
슬픔과 위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장르라면—
강문경은 그 미래를 끌고 갈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운구차와 가족들이 탄 버스는 외할머니가 평생 사셨던 시골마을을 조용히 한 바퀴 돌았다.
그 순간,
버스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눈물 섞인 미소를 짓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조용한 눈물 속에도 따뜻함이 있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이지만,
그 무게는 친구와 이웃이 나누어질 수 있다.
<망모>의 마지막 가사,
시원한 소낙비가 소년을 품에 안고 위로한다.
뒷산 중머리 돌아설제
갑작시리 소낙비가
헝크러진 내 머리 위로
후 둑 후 둑 떨어지고…
사람도, 빗방울도, 모두 그 어린 소년의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