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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Mar 03. 2021

나만 취미 없는 거 아니지?

취미 쓰는 칸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글



얼마 전 밴드 공연을 다녀왔다. 고등학교 선배 오빠가 하는 작은 인디밴드 공연이었는데, 거리가 우리 집에서는 꽤 되었다. 왕복 6시간을 이겨내고 보고 온 공연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나 의무가 아닐 때, 사람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문득 부러워졌다. 그러면서 생각은 자연히 나도 밴드를 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로 이어졌는데, 내 대답은 '아니'었다. 나는 밴드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하지,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릴 적 피아노를 10년 정도 배웠지만 현재 외우는 곡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엄마가 물놀이 가서 빠져 죽지 말라고 동네 센터에 등록해 강제로 배우게 했던 수영은 구 대회에 나갈 정도로 잘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건 밴드 연습보단 수영 강습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인 것일 뿐이지 지금 나보고 수영을 다니라고 해서 그들만큼 즐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저렇게 시간과 돈, 감정과 노력을 투자할 만큼 좋아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공연을 보고 나와 2호선, 7호선, 1호선을 갈아타면서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딱히 없었다. 어떻게 보면 아는 사람이 더 적을 수도 있겠다. 내 주변만 해도 그렇게 본인 취미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드무니까. 


그래도 아예 없는 사람은 또 없는 것 같다. 당장 우리 엄마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일이나 고민이 많아지면 뜨개질을 시작한다. 중간중간 털실을 물고 도망가는 우리 집 강아지와 싸워가며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또 내 대학 동기는 핸드폰 게임이나 메이플 스토리를 한다. 생긴 것만큼 소담스러운 만들기도 잘한다. 저번 편에 소개했던 김 모씨는 넷플릭스를 털고, 친한 동생은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고, 감성 카페를 돌아다닌다. 이처럼 다들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흔한 취미 하나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퍽 불행해졌다. 나만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들보다 재미있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내가 뭘 했을 때 즐거운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를 해봤을 때 와, 이건 진짜 내 취미로 딱이다 라거나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싶었다. 복싱을 다녔을 때도 다이어트가 목적이었고, 쓰는 다이어리는 정말 일정 정리용이다. 넷플릭스는 정기 요금만 다달이 나가고, 항상 봤던 영화나 드라마만 돌려본다. 


한참 고민하고 자책하던 중, 내가 참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왔는지, 왜 기분이 좋은지를 잊었던 것이다. 맞다, 나는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열심히 준비한 과정들이 사랑스럽고, 대단하며 감동적이다. 약 2시간이 넘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 꼭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데 너무 일률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고 싶을 때, 내가 즐거울 때 하는 것이 진짜 취미라는 걸 알았다. 공연 좋아한다고 해서 현재 올라간 모든 뮤지컬, 연극을 다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휘뚜루마뚜루 즐기는 게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2월 마지막 토요일 공연은 꽤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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