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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Apr 09. 2021

너 말고도 일 할 사람은 많아.

유난과 우울함 사이



서울에 와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태껏 서빙 알바 경력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이번엔 다른 유형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재앙의 시작이었다. 내가 선택한 건 학원 알바였다. 이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20대 중반의 나에게 적합한 일인 듯싶었다. 전공도 순수학문이기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발랄한 내 성격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학원은 녹록지 않았다. 꼭, 내가 그러했듯, 그 일의 관리자들도 학원 아르바이트가 속된 말로 "꿀알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만 해도 괜찮았을 텐데 그들은 나에게 강사 수준의 준비와 역량을 요했다. 마치 너 아니어도 쓸 대학생들은 널려있다는 듯이 말이다. 


'돈은 그만큼 안 주면서'라는 마음으로 조금은 분했고, 억울하고, 하기 싫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나 아니어도 학원에 출근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은 서울에 넘쳐났고, 나는 그 수많은 대체제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이렇게 대체 인력이 많다는 것은 책임감이 덜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대우는 낮기도 했다. 


저번 주에 나는 그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그 학원 원장은 어느 날은 선생님이 일을 참 똑 부러지게 잘해서 좋다고 하다가, 어느 날은 성격이 드세서 싫다고 하다가, 또 어느 날은 열심히 해줘서 고맙지만 본인 성격과는 잘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듣다가 하루는 물었다. 


"혹시 그만두라는 얘기를 이렇게 돌려하시는 건가요? 이미 마음 결정하신 것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말하세요?" 하자 


원장은 "정말 이 화법은 맞지 않는 화법이야 선생님. 친구들끼리도 이런 화법은 안 써. 더 할 건지 안 할 건지 말하면 되지 뭘 그렇게 말해." 하며 역정을 냈다. 어이가 없었다. 동시에 서러웠다. 이렇게 월급 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막대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고 묵묵히 원장의 얘기를 들었다. 사실 집중해서 듣진 않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되새길 내가 안쓰러워 조금이라도 충격받을 이야기를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열심히 훈계하고 떠드는 동안 난 벽지의 무늬를 셌다. 생각보다 밝고 따뜻한 아이보리 색감의 벽지였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내 잘못과 허물로 가득했다. 사실 다른 집단에서는 장점이라 여겨졌던 성격이지만 이 학원에서는 원장의 심리를 거슬리게 하는 속성에 불과했다.


지쳤다. 듣고 있는데도 지쳐서 집에 가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할 거면 그냥 그만하라고 하지, 뭐 하러 내 성격을 폄하하고 자존감을 깎느냐고 한소리 하고 싶었다. 그래도 참았다. 심지어 마지막엔 아까 되바라지게 행동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멘털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원장은 드디어 기를 죽였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해가 다 풀렸다며, 앞으로 더 잘 지내보자고, 오늘 이야기 듣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분풀이를 다 한 것인지 한결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나의 퇴근 발걸음은 평소보다 곱절은 무거웠다.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홀로 집을 향해 가면서 울었다. 너무 힘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서 더 슬펐다. 심지어 원장도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객관적으로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그 어두운 밤을 걸어오면서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계속 일을 다니는 것이 맞는지와 이 기분을 어떻게, 건강하게 수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말하면 일은 계속 다니고 있다. 혹자들은 미련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만두는 것은 도망가는 것 같아서 싫었고, 막상 나가니까 자존심이 무너지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과 함께(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일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 스트레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당장 내일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친 내 자존심과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하느냐의 문제이다. 아직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정말 쪽팔리고 속상해서 엄마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혼자 끙끙 앓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도 우울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간헐적으로 도망가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도 망망대해에서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부표 하나를 붙들고 떠다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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