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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May 15. 2021

나이 들기 싫은 나이 스물넷

얼마나 어처구니 없으실지 압니다. 그런데 한번 읽어보세요.



날이 부쩍 더워졌다. 지나가는 봄이 아쉽긴 하지만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엄청 아쉽지는 않다. 언제까지고 밖에 있어도 춥지 않은 것이 제일 좋고 일찍 뜨는 아침 해도 좋다. 또 휴가에 들뜨는 기분도 좋고 가벼워진 옷차림도 좋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최대한 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여름은 꽤 길지만 그 여름이 가면 금방 날은 추워지고 일 년은 끝난다. 난 아직 스물다섯이 될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곧 서른 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과 공포도 든다. 나의 이십 대는 왜 이렇게 짧기만 한지 모르겠다. 그 언니가 아직 스물여섯이야? 할 때와 같이 남의 20대는 길고 넉넉한 것 같은데 내 20대는 임박한 유통기한 같다. 


정말 나이 들기 싫다. 나보다 어른들이 보면 아유 스물 넷이면 애기지, 한창이야, 뭘 벌써 그런 걱정을 해 할 것을 안다. 난 이 소리를 정말 오래 듣고 싶다.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는 말 말이다. 나이가 들면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지고 나를 보여줘야 하는 일도 많아진다. 난 이것이 가장 두렵다. 


이십 대 중후반이 되면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직책을 가지고, 남은 일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자신이 없다. 어디든 나를 소속시켜 줄 단체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사회에서 1인분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누구에게 짐이나 부담이나 부끄러움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 


지금 준비하는 모든 것들이 어딜 향하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졸업인데 취업은 어디 쪽 생각하냐는 물음에 농담조로 '저 써주는 곳이요' 하며 넉살 좋게 웃는 것도 지쳤다. 아무 준비도 없이 사회로 던져지는 느낌이다. 물론 완벽한 준비는 어디에도 없지만, 세상 벽에 비해 나는 쪼렙이다. 


사실 이 모든 고민과 서러움들이 내가 더 잘 살고 싶어서, 잘 해내고 싶어서와 같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젠 적당한 타협선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반건조 오징어처럼 빨린 나는 정말 어디든, 누구나 받아준다면 다 괜찮을 것 같다. 


복기해보면, 작년 여름에는 인턴을 하고 있었고, 재작년에는 알차게 아르바이트하고 놀았고, 그 전년도와 스무 살에는 여행 다니며 놀았다. 적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혹시 내가 지금 못 놀아서 이다지도 우울한가? 아무튼 그때는 어리니까, 스무 살이니까, 아직 이 학년이니까 등으로 버티고 신나게 보냈는데 이번 여름은 정말 시작되지도 않은 장마 바이브다. 축축 처지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를 보며 제발 그만 좀 그쳐라! 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묻고 싶다. 다들 어떻게 24살, 25살을 이겨냈나요.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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