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우울 루틴
내가 섣불리 우울을 정의해보자면, 당장 뛰어내리고 싶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나한테 우울이 찾아오면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계획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고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죽고 난 뒤를 가끔 생각해보는데, 처음에는 남겨진 내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곤 했다.
그러다 더 큰 우울이 찾아오고 깊어지면,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진다. 이기적이게도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런 날이면 아무리 운동을 하고 오고 식사를 챙겨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노트북을 펼 수도 없고, 계획했던 방청소도 못하겠고, 방문을 닫고 불을 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내 방은 불을 끄면 한없이 어두운데, 비까지 오면 한껏 컴컴한 공간이 된다. 그 속에서 캔들 하나만 켠 채 누워있는다.
간헐적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자조적으로 삼키면서 침대 속으로 더 파고든다. 그러다 조금 괜찮아지면 유튜브를 보고, 더 괜찮아지면 노트북을 켜고 넷플릭스에서 트와일라잇을 본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기 때문에 무언가가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1인 가구의 비애, 배달음식을 양껏 시킬 수는 없으니 소소한 먹을거리를 찾는다. 초콜릿이나 쿠키 같은걸 잔뜩 먹곤 하는데 처음 혼자 살게 된 3월, 4월에는 그렇게 술을 마셨었다.
영화도 보고 배도 채우고 나면 문득 정신이 드는 것 같다가도 어느덧 깜깜해진 밖을 보면 다시 우울해진다. 남들이 보낸 꽉 찬 하루와 오늘의 내 하루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때부터는 위험해서라도 방구석에 누워있지 않고 꾸역꾸역 샤워라도 하러 간다. 누군가 우울은 수용성이라 씻고 나면 어느 정도 나아진다고 한 말을 되뇌면서.
어느덧 밤이 되고 잘 시간이 되어도 불면증이 심한 나는 잠들지 못한다. 사실 종종 일부러 잠들지 않을 때도 있다. 한 것도 없는 내가 속 편하게 자는 게 싫어서 새벽 4시, 5시가 되어 눈이 뻑뻑해지도록 잠을 참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7시간씩 자고 멀쩡한 몸 상태가 되는 게 싫다. 이게 나쁜 건 머리로는 아는데 잘 안된다.
잠이 안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렸는데 이제는 일부러 안 잔다니 웃기는 일이다. 그렇게 끈질겼던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온다. 이 정도가 내 우울 루틴이다. 처음에는 이 말도 안되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다음에는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났다가, 지금은 다 놓아버렸다.
이쯤 되면 누구에게나 있는 루틴처럼 이 루틴도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건가 싶다. 그래도 생각보다 얌전해서 다행이다. 만약 집안을 다 때려 부수거나, 옷을 찢고, 다리 위에 한 쪽 다리를 올리거나 하는 루틴이면 품을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이게 우울증인지, 불안장앤지, 공황장앤지 아님 전부 다 인지는 모르겠고, 꼭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이런 날의 빈도가 줄어들면 완벽한 자가 치유가 아닌가. 다행히 요즘에는 좀 줄었다. 나는 이런 시기를 경계한다. 마치 장염이 잠시 소강한 상태에 자신 있게 냉면을 들이켰던 어느 여름날처럼, 조급한 마음에 모든 걸 그르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늦춘다. 할 수 있어, 잘될 거야 같은 말도 안 한다. 그저 길고양이가 먼저 다가오기 전까지 무심하게 다른 곳을 보는 척을 하듯이 우울이 옅어지는 순간도 흐린 눈으로 못 본 체한다.
이 글도 결국 약간의 기대와 미약한 결심으로 끝나는 걸 보면 앞으로 나는 더 나아지고 나아갈 건가 보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