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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Mar 10. 2021

강북의 작은 센트럴파크

행복세권에서 살아가기



비가 많이 내리던 3월의 첫날, 서울로 입성했다. 경기도 한 산골마을에 살면서 한 학기의 휴학기간을 보낸 나는,  처음에는 좋았지만 갈수록 서울이 그리워졌다. 가족들도 가끔 봐야 애틋하다고, 막상 반년 정도를 같이 사니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 복학을 하게 되면서(사실 모든 수업이 비대면이지만), 서울로 올라올 방법을 다방면으로 강구했다. 


그 결과 강북구 한 구석에서 나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오늘로 약 열흘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친구들 가끔 만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주변 시장에서 장도 보고, 택배들과 짐을 정리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틈틈이 수업도 들어야 했으니 정말 정신없는 일주일이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알람에 맞춰 9시쯤 일어나, 컴활 강의를 하나 듣고 늦은 점심밥을 차려 먹은 뒤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요즘 낮에는 꼭 봄 날씨라 적당히 가볍게 입어도 서늘하지 않아서 좋다. 그렇게 지갑과 에어팟, 핸드폰 정도만 덜렁 챙겨 밖으로 나오면 햇살이 반겨준다. 괜히 기분이 들뜬다. 


곧장 따릉이 앱을 켜, 주변 대여소를 검색한다. 가장 가까운 대여소에 4개의 따릉이가 남아있었고, 하나를 대여해 올라탄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지만 걱정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 우이천이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함께 있어 걷는 사람들 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반이지만 복잡하거나 위험한 느낌은 없다. 그만큼 넓고 길이 잘 되어있다. 햇살을 받으며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우이천을 달리니 행복해졌다. 세상 여유로웠다. 


내 기분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조깅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은 물론이고 러닝 하는 사람, 벤치에 누워 낮잠 자는 사람,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인지 목에는 사원증,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되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자니, 문득 여기가 센트럴파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미드나,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금발을 휘날리며 예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물론 내 모습은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주인공이었다. 


푸른 잔디와 피크닉은 없지만, 비슷하게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다를 게 없다며 정신승리를 하다가 웃음이 나왔다. 진짜 기분이 좋긴 했나 보다. 내가 이렇게 마음 놓고 여유 부리며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별 거 아닌 걸로 행복해져서 이상했다. 


내일도 강의가 일찍 끝나면 나와봐야겠다. 센트럴파크 주변에 사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누려야지. 장마가 오기 전까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시간은 세상 여유로운 뉴요커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다. 언젠간 질리겠지만, 몸과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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