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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Dec 04. 2020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인 것은?

정답은 월경과 연애




이번 달 생리를 건너뛰었다. 사실 처음 있던 일은 아니다. 지난 2월을 마지막으로 5월 말까지 한 달에 한 번 와야 하는 님은, 함흥차사였다. 그래도 약 90일 정도를 건너뛰고 다시 월경을 시작한 후에 이번 10월까지는 나름 규칙적으로 찾아와 줬다. 고등학교 때부터 약 28일 정도로 칼 주기였고 밀려야 40일 정도의 주기를 가졌던 나는 약 3달간 멈춘 월경에 불안하면서도 안일했다. 혹시 무슨 병이 있나, 혹 같은 게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면 주변 유명한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어떤 검사를 하고 진료비는 얼마인지 정보를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가도 퇴근하고 나면 언제 또 병원을 가나 싶어 다시 합리화를 한다. 갑자기 시작한 인턴 생활 때문에 그런 거겠지,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하고 넘기며 오지 않는 월경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퍽이나 미련하다. 두 달 이상 건너뛰면 꼭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나는 내 월경이 멈춘 이유가 다이어트 때문인 줄 정말 몰랐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매일 앉아서 일을 하고 점심을 밖에서 사 먹고, 탕비실 과자를 야금야금 먹다 보니 군살이 좀 붙었다. 살찌는 것에 대단한 강박과 스트레스를 가진 나는 간식을 끊고 끼니를 줄이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닭가슴살 100그램과 방울토마토를 먹고 점심에는 회사에서 일반식의 절반만 먹었다. 그것이 하루의 마지막 식사였다. 점심을 마지막으로 다음날 아침까지 물과 커피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내 새벽은 길어졌다.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유튜브로 먹방을 보며 밤을 보냈다. 이틀 동안 8시간도 자지 못한 적도 있다. 하루에 1000칼로리도 먹지 않고 일을 다니다 보니 살은 빠지는 것 같았는데, 월경은 멈추고 안색은 파리해졌다. 나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라 믿었다. 마르고 연약한 이미지 말이다. 그러다 5월 말에 애인이 생겼고,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데이트 때마다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이전 식습관이었던 하루 1000칼로리는 훌쩍 넘었고 배부르니 잠도 잘 왔다. 살은 좀 쪘지만 다시 건강해짐을 느꼈다.(현재 그 애인과는 결별한 상태다.)


그 후, 매번 pms와 통증에 힘들어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11월 내 생일 즈음에 시작해야 했던 월경은 하필, 딱 그 주에 걸린 장염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또다시 감감무소식이었고 예정일에서 2주가 지난 후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일까. 이번에는 미련 떨지 않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를 하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니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 했다. 한쪽 난소가 굉장히 심하게 부어있다고, 자연적으로 월경을 하기 힘들어 보이니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 전 주, 장염 때문에 항생제 주사를 맞고 다시 아픈 호르몬 주사까지 맞으라니. 안 그래도 주사를 무서워하는 나는 지긋지긋해졌다. 


그래도 주사를 맞고 약 5만 원의 거금까지 수납을 하고 나오니 어딘가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매번 미루던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서인지, 정확한 문제와 원인을 알아서 인지, 그래도 큰 문제나 병은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가뿐했다. 주사를 맞았으니 약 5일에서 10일 사이에는 월경을 할 것이고 만약 그 이후에도 하지 않으면 꼭 다시 내원하라는 당부와 두 달간 월경을 하지 않을 때엔 꼭 병원을 찾으라는 꾸짖음을 들어도 마음이 편했다. 


약 6일이 지난 어제, 월경을 시작했다. 호르몬을 강제로 주입해서 시작한 월경이고 그 여파로 허리 아래로는 내 신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시작했으니 됐다. 마음이 놓인다. 그러면서 문득 헛웃음이 난다. 연애와 월경은 왜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일까. 이쯤 되면 이건 모든 여성들의 난제인가 싶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 월경이 무사히 찾아왔으면 좋겠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 독자들도 무사하고 건강한 한 달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속 한 구절처럼 말이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어울리는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무사하기를, 아무 걱정 없는 한 달 중 일주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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