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제 Jul 08. 2021

라 쿠카라차!

우당탕 새벽 대소동




나는 현재 도봉구에 한 빌라에 거주 중이다. 그곳은 셰어하우스인데 나까지 총 3명이 살고 있다. 방은 총 3개고 화장실은 안방에 한 개, 거실에 한 개 해서 총 두 개다. 그중에서 나는 안방 다음으로 큰 방에 살고 있는데, 이 방은 아쉽게도 조망권이 중동 갔다. 물론 제일 작은 방은 매트리스도 놓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서 절대 선택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볕 안 드는 건 좀 아쉽긴 하다. 내 방은 제일 작은 방과 벽을 맞대고 붙어있으며 현관을 마주 보는 구조이다.


자, 왜 이렇게 알고 싶지도 않은 빌라의 방 구조를 상세히 설명하냐면 이것이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과 사는 것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작년까지도 지역 학사에 살았으니 거의 6-7년 정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남과 살아왔다. 베테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절대 아니다. 자타공인 낯선 이와 동거 능력자다. 어렸을 때는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고 원만한 관계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그것이 정답이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내 룸메이트들은 간헐적으로 좋았다가 최악이었다가 했다. 스무 살에 만난 룸메는 지금도 만날 정도로 세상 영혼의 단짝이 되었지만 그다음 해에 만난 두 살 언니 룸메이트는 머리채를 잡을 뻔했다. 그다음에 만난 친구는 고등학교 때도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라 행복했고, 그 뒤에도 썩 나쁘지 않은 언니나 동생들과 살았다. 사실 스물둘, 셋 정도가 되면서 룸메이트와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게 된 이유가 컸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무난히 잘 살 것이라 예상했다. 심지어 한 방에 와글와글 모여사는 기숙사가 아니라 한 사람 당 방 하나씩 쓰는 셰어하우스가 아닌가! 사감도 없고, 규칙도 없는 일반 빌라에서 살아가니 더더욱 그럴 것이라 자만했다.


완벽한 내 오판이었다. 나만 경력직이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옆 방에 사는 22살은 신입이었다. 가족들이 아닌 남과 처음 살아보는, 자취 경력도 없는 정말 찐 신입 말이다. 정말 기본 예의는 엿과 바꿔먹은 듯했다. 당연히 서울 모든 빌라들이 그렇듯 우리집도 방음에 굉장히 취약했는데, 아까 언급했듯이 두 방은 벽을 맞대고 있어 그 방 소리가 굉장히 잘 들렸다. 걔는 종종 밤에 친구와 큰소리로 욕을 하며 통화하곤 했는데 몇 번은 참았다. 괜히 기분 나쁜 소리 하기 싫어서가 컸다. 하지만 나도 시험 기간일 때 결국 한소리 했다. 통화 좀 조용 조용히 해달라고, 너무 시끄럽다고 말이다. 그리고 세탁기도 밤 10시 넘으면 안 돌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필요한 물건 있으면 빌려주고, 먼저 나서서 청소도 하고 웃으며 스몰 토크도 잘했다. 나이 도 비슷하고 같이 사니까 굳이 나쁜 관계일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건데 그 애가 느끼기에는 무슨 친언니쯤 되었던 거 같다. 얼굴에 단연 불편감과 당혹감이 번졌고 죄송하다는 사과가 돌아왔다. 나는 아니라며, 앞으로 조금만 조심해 달라고 했고 대강 마무리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딱 이 정도였다. 걔가 실수하거나 선을 넘으면 내가 돌려서 주의를 부탁하는 사이. 나도 남과 사는 만큼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했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났다. 그 애 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것이다. 그날 아침부터 난리가 났고 결국은 그 애가 잡았다고 했다. 단톡방이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물론 나는 바로 옆 방이기에 찝찝하고 소름 끼쳤지만 내 방에서 나온 것은 아니니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바퀴벌레 소동은 하루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 


요즘 내 일정은 약 오전 6시 반에 일어나 준비해서 광화문으로 근로를 갔다가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수유로 넘어가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학원 알바를 하는 극한 스케줄이다. 난 내가 아이돌인 줄 알았다. 아무튼 자연히 체력은 떨어져 어디 앉기만 하면 병든 닭처럼 졸아댔다. 내가 그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걸 우리 집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사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방문을 두들기는 일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알람을 못 듣고 늦잠을 자서 옆 방 애가 깨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보니 아직 밤이었고, 나는 상황 판단이 안된 상태로 물었다.


"왜?"

"언니 저기 신발장에... 바퀴벌레가 나왔어요."


신발장을 보니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바퀴벌레가 있었다.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저것 좀 잡아주세요."


순간 엥 하는 생각이 들어 "근데 너는 이 시간에 어딜 가다가 신발장에 있는 바퀴벌레를 본 건데?" 하고 물었고 "아,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그거 뚫을 거 사러 나가다가 봤어요." 했다. 


나는 바퀴벌레보다 내일 아침에 화장실을 못 쓸 상황이 짜증 났고 "야 그럼 어떡해? 나 내일 아침부터 출근 준비해야 되는데?" 했다. 그러자 걔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 그건 제가 해결할게요. 일단 저 바퀴벌레부터..." 하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짜증이 난 나는 "야 휴지 줘 봐." 하고 바퀴벌레를 잡았고, 다음에 몇 시인지 물었다. 새벽 두 시였다. 웃음이 나왔다. 이제 막 2시간 정도 잠든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불면증이 심해서 아마 다시 잠들지도 못할 텐데 4시간 뒤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한숨을 쉬곤 "그럼 나 이제 들어가도 되니?"하고 방에 들어와 누웠지만 정말 너무 당연하게도 잠이 안 왔다.


그렇게 4시까지 잠도 못 자고 힘들어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걔가 친구와 큰소리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20분 정도는 호구같이 참았던 거 같다. 그러다 문득 짜증이 너무 나서 카톡을 보냈다. "조용히 좀 할래?" 하자 "죄송합니다" 덜렁 답장이 왔다. 그렇게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그날의 극한의 일정을 소화했다. 커피를 몇 잔을 마셨는지, 위액은 올라오고 머리는 무겁고 딱 죽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화가 더 나기 시작했고 곧 폭발 직전까지 부글부글 끓었다. 그때까지도 일말의 이성이 있던 나는 그다음 날 아침에 터졌다.


출근 전 먹을 요거트 볼을 만들고 있는데, 걔가 주방에 나왔다. 당연히 건성이라도 사과를 건넬 줄 알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쌩깠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일말의 고민 후 오후에 카톡을 보냈다.


"오늘 몇 시에 들어와? 나 할 얘기가 있어서."

"아 저 요 근래 늦게 들어갈 것 같아요. 카톡으로 보내주세요."


순간 뒷목이 당기고 울컥 화가 차올랐다. 


"야 사과부터 해야 정상 아니야?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어이가 없어서 진짜. 네가 하기 싫고 더러운 일이면 나도 하기 싫지. 어디서 자는 사람을 깨워놓고 쌩까고 사과 한 마디를 안 해 너는. 진짜 개념 없다."라고 보냈다.


그러자 "저 오늘 아침에 쌩간 것 아니고요. 사과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화나 보이셔서 눈치 본거예요." 하는 답이 돌아왔다. 차라리 그냥 이때라도 사과하면서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어 그랬다고 말했으면 이렇게 지금 내가 되새기면서도 화나지 않았을 텐데 그 아이는 남달랐다. 그 뒤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설전이 오갔다.


"말 안 통하네 그냥 얼굴 보고 얘기하자. 너 진짜 개념 없고 생각도 없다. 사과할 마음도 없어 보이니까 나도 안 들은 걸로 하겠다. 하지 마라 그냥." 

"저 진짜 하려고 했다니까요? 언니 마음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언니랑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요. 제가 일 때문에 늦는 건데 어쩌라고요. 말 안 통하시면 그냥 쌩까세요."라고 역대급 멘트를 시전 했다.


나는 스물네 살까지 살면서 그렇게 화났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와 말이 안 통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때부터는 폭주기관차였다. 전화를 걸어 한껏 퍼댔다. 넌 내가 등신으로 보이냐면서, 작작하라고, 진짜 너랑 한 카톡을 내 친구들 120명한테 보여주면 150명이 싸가지 없다고 할 것이라며 신랄하게 비꼬았다. 


결론적으로 걔가 죄송하다고 했지만 들은 사람도 한 사람도 아무도 없는 껍데기뿐인 말들이 오갔다. 하이라이트는 여기서부터다. 대강 마무리를 하고 끊은 전화가 바로 걸려왔다.


"어 왜."

"언니 저 혹시 언니랑 한 카톡방 나가도 돼요?"


"어 그건 네 맘이지 왜 나한테 물어" 하고 끊자, 다시 또 걸려왔다. "어... 그럼 언니는 안 나가실 거예요?" 헛웃음이 샜다.


"야 그건 내 맘인데 네가 알빠야? 웃긴다 너 끝까지."

"아니... 진짜 언니 친구분들한테 그 카톡 보여주시고 그럴 거예요?"

"야 말 같지도 않은 말 계속할 거면 전화하지 마. 짜증 나니까."


전화를 끊고 기분이 곱절로 개 같아졌다. 얘도 그럼 지가 잘못한 거 알고 있단 거잖아. 정말 말렸네 나. 피우지도 않는 담배가 다 피고 싶었고, 소주를 대꼬리로 마시고 싶어 졌다. 물론 그렇게 한바탕 한 이후로 난 악착같이 더 집에 오래, 자주, 많이 붙어있으려고 했다. 불편하면 네가 나가라.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 결과 그 애는 집에 있더라도 없는 듯이 있고, 밤늦게 들어오거나 주말이면 잘 안 들어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기싸움에 지치는 것도 난데 말이다. 어쩐지 이번 연도는 큰 이슈가 없다 했다. 누구든 이 썰을 듣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고 나보고 독하다고 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난 이제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바퀴벌레보다 싫은 인간과 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사춘기 가출 청소년처럼 집구석이 지긋지긋하다. 저는 이제 어디서 쉬어야 하나요.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전 02화 사랑과 증오 그 어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