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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Sep 03. 2021

일부러 잠들지 않는 사람의 심리

나만의 우울 루틴



내가 섣불리 우울을 정의해보자면, 당장 뛰어내리고 싶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나한테 우울이 찾아오면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계획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고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죽고 난 뒤를 가끔 생각해보는데, 처음에는 남겨진 내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곤 했다.


그러다 더 큰 우울이 찾아오고 깊어지면,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진다. 이기적이게도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런 날이면 아무리 운동을 하고 오고 식사를 챙겨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노트북을 펼 수도 없고, 계획했던 방청소도 못하겠고, 방문을 닫고 불을 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내 방은 불을 끄면 한없이 어두운데, 비까지 오면 한껏 컴컴한 공간이 된다. 그 속에서 캔들 하나만 켠 채 누워있는다.


간헐적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자조적으로 삼키면서 침대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다 조금 괜찮아지면 유튜브를 보고,  괜찮아지면 노트북을 켜고 넷플릭스에서 트와일라잇을 본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진정이  상태기 때문에 무언가가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1 가구의 비애, 배달음식을 양껏 시킬 수는 없으니 소소한 먹을거리를 찾는다. 초콜릿이나 쿠키 같은걸 잔뜩 먹곤 하는데 처음 혼자 살게  3, 4월에는 그렇게 술을 마셨었다.


영화도 보고 배도 채우고 나면 문득 정신이 드는 것 같다가도 어느덧 깜깜해진 밖을 보면 다시 우울해진다. 남들이 보낸 꽉 찬 하루와 오늘의 내 하루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때부터는 위험해서라도 방구석에 누워있지 않고 꾸역꾸역 샤워라도 하러 간다. 누군가 우울은 수용성이라 씻고 나면 어느 정도 나아진다고 한 말을 되뇌면서.


어느덧 밤이 되고 잘 시간이 되어도 불면증이 심한 나는 잠들지 못한다. 사실 종종 일부러 잠들지 않을 때도 있다. 한 것도 없는 내가 속 편하게 자는 게 싫어서 새벽 4시, 5시가 되어 눈이 뻑뻑해지도록 잠을 참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7시간씩 자고 멀쩡한 몸 상태가 되는 게 싫다. 이게 나쁜 건 머리로는 아는데 잘 안된다.


잠이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렸는데 이제는 일부  잔다니 웃기는 일이다. 그렇게 끈질겼던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온다.  정도가  우울 루틴이다. 처음에는 이 말도 안되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다음에는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났다가, 지금은  놓아버렸다.


이쯤 되면 누구에게나 있는 루틴처럼  루틴도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건가 싶다. 그래도 생각보다 얌전해서 다행이다. 만약 집안을  때려 부수거나, 옷을 찢고, 다리 위에 한 쪽 다리를 올리거나 하는 루틴이면 품을  없었을테니 말이다. 이게 우울증인지, 불안장앤지, 공황장앤지 아님 전부  인지는 모르겠고,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이런 날의 빈도가 줄어들면 완벽한 자가 치유가 아닌가. 다행히 요즘에는 좀 줄었다. 나는 이런 시기를 경계한다. 마치 장염이 잠시 소강한 상태에 자신 있게 냉면을 들이켰던 어느 여름날처럼, 조급한 마음에 모든 걸 그르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늦춘다. 할 수 있어, 잘될 거야 같은 말도 안 한다. 그저 길고양이가 먼저 다가오기 전까지 무심하게 다른 곳을 보는 척을 하듯이 우울이 옅어지는 순간도 흐린 눈으로 못 본 체한다.


이 글도 결국 약간의 기대와 미약한 결심으로 끝나는 걸 보면 앞으로 나는 더 나아지고 나아갈 건가 보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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