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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에서 알파카까지

제주 버킷리스트 8) 딸 인생사진 찍어주기

by 씬디북클럽




멀티 프로필을 알고 있는가.


카톡 프사를 몇 가지로 설정해 여러 관계에 각각 다른 이미지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의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관계에는 평범한 사진으로, 격의 없이 친한 관계에는 좀 더 나를 보여주는 사진으로.






남매의 프사가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과 엄마인 내게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서운함까지 부정할 순 없었다. 그럴 수 있지. 아무것도 안 뜨는 것보다는 낫지. 차단이 아닌 게 어디야. 아이들 프사가 바뀔 때면 언제 사라질 새라 얼른 저장을 해 두 한다.



딸은 나를 닮아서인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아니, 요새 애들 일상 자체가 사진을 찍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과 영상이 저장 공간을 다 차지해 앱이 열리지 않을 정도라니. 삭제 좀 하라도 해도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하긴, 나 역시 갤러리 저장 공간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잡아 삭제 좀 해야 하는데, 그날이 도통 잡혀야 말이지.



제주에서 딸과의 시간을 계획하며, 꼭 딸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마음에 들어서 프사에 올릴 수 있는 사진. 내가 찍어준 사진을 누군가가 프사에 올려주면 표현은 안 하지만 뿌듯함이 있듯이. 딸 마음에 드는 사진을 꼭 찍어주고 싶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하루에 하나씩 각자 원하는 곳에 들르기로 했다. 엄마는 책이나 커피에, 딸은 주로 털 달린 동물들에 진심이었다.






곰인형에 진심인 아이는 테디베어 박물관에 가고 싶어 했다. 동선을 따라 천천히 모든 설명을 읽다가 꺄악 소리를 질렀다. 여기 서 봐 엄마 봐봐 웃어 봐 포즈 바꿔 봐는 절대 통하지 않을 나이. 그저 멀리서 몰래 살짝 숨어서 사진들을 찍었다. 엄마가 저 사진을 찍는 줄 귀신같이 알고선 홱 고개를 돌려 도망쳤다.


테디베어 박물관은 벌써 세 번째 방문이었다. 신혼 때 남편과, 아이들 어릴 때 아이들과, 그리고 이번엔 딸과. 다 큰 애가 무슨 곰인형이냐 싶었지만 아이는 제대로 진심이었다. 입장하면서 만난 거대한 곰인형의 품에 파묻혔고, 처음에 등장하는 테디 베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한참 자세 읽었다. 모든 전시물들에 진지했고 열심이었다. 공부할 때 좀 그렇게 진지하고 열심이여라 하는 말은 넣어 두었다. 인형 굿즈를 하나 사 들고 나왔다.








아이가 사진과 영상을 찍어 달라고 한 유일한 장소는 알파카 농장이었다.



알파카는 소목 낙타과의 포유류로 크기가 라마보다 작다.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 등 고산 시대에서 방목 형태로 서식하는 동물이다.

(출처 : 나무위키)



제주 애월에 위치한 도치돌 알파카 목장에는 수십여 마리의 알파카들이 있었다. 건초나 당근 등 직접 먹이를 주거나 울타리 안에 들어가 가까이에서 알파카를 만날 수도 있었다. 부드러운 털과 귀여운 얼굴을 갖고 있는 알파카는 성격이 온순하다고 한다.



"꺄악~ 엄마, 나 얘랑 사진 찍어 줘.

먹이 먹여 주는 거 동영상 찍어 줘."



내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낯선 동물들일뿐인데.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가까이 다가서기 무섭기만 한데. 딸은 괴성을 지르며 알파카들에게 달려갔다. 전단지에 표기된 알파카의 사진과 이름을 비교하며 찾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먹이를 먹여주고 사진 찍기에도 부족했는지 직접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침을 뱉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괜찮겠어? 딸은 거침없었다. 겁을 내면서도 슬쩍 다가가 등을 쓰다듬었다. 목에 걸린 이름표를 보면서 네가 액자구나, 너는 커튼이구나. 안녕, 윌리엄? 이름을 불러 주었다. 사진과 영상을 찍다 지친 엄마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참 바라보았다. 이렇게 신나 하는데, 저렇게 즐거워하는데. 네가 좋았으면 그걸로 됐다.




곰돌이 인형들과 알파카 친구들 속에서 딸의 사진을 무수히 많이 찍었다. 가족톡방 말고 본인 개인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아이는 알파카와 자신이 크게 나온 셀카를 카톡 프사로 올렸다. 내가 찍어 준 사진은 아니었지만, 그 셀카를 찍던 순간 바로 옆에 있었다. 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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