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미혼의 강소영에게 스벅이란, 밥보다 비싼 커피를 파는, 사워증을 목에 건 캐리어 우먼들이나 갈 수 있는 고급진 카페였다.
육아가 한창이었던 30대의 강소영에게 스벅이란, 밥 한 끼만큼 비싸긴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에게 주는 선물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러나 마실 때마다 '왜, 이걸 이 돈 주고 사 마시지?'라고 속엣말을 하던 곳이었다.
40대 중반의 강소영에게 스벅이란, 원서 완독 후 받는 스벅 쿠폰의 맛을 진작에 알게 해 준 카페이다. 그 맛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쿠폰을 선물하고 별을 쌓고 프리퀀시를 모아 다이어리를 받는 재미를 알게 해 준 곳이다.
2024 봄 에디션
한국 스타벅스 매장 수가 세계 4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한 한국 스타벅스 매장 수는 인구가 한국의 2.5 배인 일본(1901개)보다 8개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출처 : 파이낸셜 뉴스)
이 뉴스를 제주에서 차 안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다. 강남 근처에 가면 두어 건물 건너, 한두 횡단보도 건너 스벅을 발견하고 많긴 많다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전국 1,893개라니. 곧 일본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설 기세라니.
커피 맛을 모르지만 카페 가기를 즐긴다. 집 근처 작은 카페는 불편한 이웃을 마주칠까, 테이블 순환에 방해가 될까, 오래 앉아 있기 편치 않다. 커피와 피아노가 있는 최애 카페는 가깝지 않아 한 달에 한번 가는 정도다. 그나마 제일 만만한 건 스타벅스. 도보 25분 소요를 '스세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집 근처 가장 가까운 스벅의 7시 오픈런을 종종 시도한다. 2층을 혼자 누리는 호사를 좋아한다. 짧지만 고요한 시간, 창밖 풍경이라고는 주유소 주변 건물 도로가 전부일지라도 괜찮다. (지금 이 글도 바로 그 스벅에서 쓰는 중이다.)
튀지 않는 인테리어, 나쁘지 않은 커피맛,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압도적으로 비싼 편도 아니다. 백색 소음도 장점 중의 하나. 가사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팝이나 재즈 위주의 배경 음악도 뭔가에 집중하기에 좋다.
낯선 공간 속의 나만의 울타리. 일부러 스벅을 찾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마시고 먹고 씻고 든 안 씻고 든 길게든 잠시든 들르면 그만이다. 대중에 속한 채로 극히 개인적이 된다. 나는 안전한 이방인이 되어 읽다가 쓰다가 멍을 때리다가 일어선다.
스벅 앱을 켤 때마다 'Jeju only'에 눈이 머물곤 했다. 이런 곳은 창밖 풍경도 제주 제주 제주이겠지? 순수 오리지널 제주 녹차를 이용한 라테는 특별할까? 현무암 닮은 디저트는 어떨까? 언젠가 제주에 간다면 주문해야지 했던 그 '언젠가'가 바로 이번이었다.
빠듯한 일정 가운데 최우선으로 삼은 것 중의 하나는 동선이었다. 일부러 먼 길로 돌지 않기, 운전에 들일 시간을 아끼기, 최대한 동선이 꼬이지 않게 맞추기.
이번 동선에서 그나마 가까운 제주 스벅은 '더제주 송당파크 R'이었다. 마지막 날 밤 펜션에서 스벅 앱을 열어 검색하면서 또 머리를 굴렸다. 아, 여기 갈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어? 더제주 송당파크 R only 메뉴가 따로 있네? 메뉴들 앞에 붙은 제주 팔삭이 무슨 뜻이지? 말차 티라미수 라떼 한 잔이면 될 것 같은데. 9,400원이나 주고 마실 의향도 의미도 있는 걸까. 후기를 보니 제주스럽다고는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일부러 스벅에 가야 하나? 내일은 네 명이 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나만 좋아하는 스벅을?굳이?
결국, 온리제주 스벅을 내려놓았다. 시간으로나 효율성으로나 그 편이 나았다. 네 명이 함께 하는 유일한 일정, 이곳에서도 '각자 또 함께' 우리의 모토는 여전했다.
자전거 종주를 마친 남편은 사우나를,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남매는 산방산랜드를 택했다. 나는 세 사람을 내려주고 1시간 남짓의 미타임을 얻었다.
산방산 제주말차 샷 라떼 한 잔과 스콘 하나를 주문했다. 2월의 유채꽃이 만발한 창가 자리는 이미 만석. 각도를 틀면 산방산이 보이는 책상 테이블에 앉았다. 초록 한 모금이 입 안에 들어서자 제주 스벅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나갔다. 언제 다시 밀려 올 버킷리스트가 될지라도.
산방산 제주말차 샷 라떼와 스콘
접시에 진심인 카페 '오라디오라'
(표지의 사진 스벅은 제주중문점이다. 유일하게 마주친 스벅이었지만, 들어갈 겨를이 없었다. 아니, 스벅 말고 중섭의 집을 택했었다. 스벅이야 집 근처에서 가면 되지 뭐 했다. 과연 그럴까.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