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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어, 뭣이 중헌디

제주 버킷리스트 5) 대방어 먹기

by 씬디북클럽




제주 방문은 의미 있고 기억에 남았다. 음식들도 모두 맛있었다. 그중 가장 맛있게 입력된 메뉴는 2023년 겨울 한라산 등반 후 남편과 먹었던 대방어였다.



'여름 방어는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이 있듯 겨울이 제철인 방어. 그중 8~10kg 이상 큰 개체를 대방어라고 부른다. 붉은빛이 도는 두툼하게 썬 대방어 한 점을 집어 마른 김 위에 올리고, 쌈장 약간, 저민 마늘과 고추, 알싸한 생와사비 조금을 올려 한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렸던 식감은 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길고 힘든 여정을 보내고 난 노곤함 탓인지, 자주 맛볼 수 없는 현지 계절 메뉴의 특별함 덕분인지, 함께 곁들인 한라산 소주 한 잔과의 꿀조합 때문인지, 설명할 수 없는 맛있는 기억을 꼭 다시 한번 되살리고 싶었다. 회라고는 연어 광어가 전부인 줄 아는 남매에게도 꼭 각인시켜주고 싶었다.







모녀의 제주 첫 끼 메뉴는 고기국수였다.


애정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15~16화에서는 제주 고기국수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정명석 변호사의 추억이 담긴 고기국수의 원조가 행복국수였나 행운국수였나. 행운이든 행복이든 우중충하고 흐린 공기에 국수 한 그릇이 간절했다. 면 요리와 족발을 좋아하고 멸치국물보다는 사골국물로 끓인 떡국이나 돼지국밥을 좋아하는 우리 집 미슐랭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설 당일 영업 유무가 관건. 다행히 전화를 받아주는 한 곳을 머지않은 곳에서 찾았다.


주문하자마자 국수 두 그릇을 마주했다. 뽀얀 국물 한 숟갈을 떠먹으니 뜨끈한 기운이 목구멍부터 배꼽까지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후추를 좀 더 넣고 면발 한 젓가락을 떴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고 꾸미지 않은 솔직한 맛. 온탕에 들어앉은 어르신처럼 "어, 좋다."를 내뱉으려다가 말았다. 나는 아저씨 스타일이 절대 아니니.






넷이 함께 하는 첫 저녁 식사에서도 영업 유무가 관건이었다. 대방어 검색에 실패하고 고른 곳은 펜션 초입구에 있던 조개구이집. 가리비 치즈구이도 크고 작은 이름 모를 조개들도 불판 위에서 잘 익어 다문 입을 벌렸다. 조개대장 남매도 아기 새처럼 잘도 입을 벌렸다.






모녀의 둘째 날 첫끼도 국수가 되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한참 메뉴를 검색했다. 아침부터 너무 무겁지 않고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고 또한 맛도 있어야 했다. 전복을 좋아하니 전복죽을 먹을까 물으니 전복은 구운 게 좋다 했다. 우동을 먹고 싶다 하기에 그건 집에서도 먹을 수 있지 않냐 답했다. 미슐랭 입맛에 맞는 메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해냈다.


(잘게 썰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전복이 들어 있고, (뭔지 잘 모르겠지만) 보말도 들어 있고, 칼국수는 면발도 탱글탱글했다. (적응 양이지만) 불향이 나는 돼지고기도 맛있었고, (설렁탕 마냥) 국물이 뽀얗지는 않지만 감칠맛이 돌았고,우동 면발도 탱글탱글했다. 맛있다면서도 남긴 딸아이의 우동을 후루룩 들이켰다. 이러다간 1일 3국수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보말 전복 칼국수 + 흑돼지 숯불 우동





넷의 마지막 만찬은 제주 흑돼지였다.


제주의 마지막 밤 펜션이 위치한 월정 해변에는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날리는 머릿결을 배경 삼아 셀카를 찍고 세게 치는 파도를 bgm 삼아 짧은 산책을 했다. 한껏 배가 고파진 상태로 들어선 식당. 간판 그림의 털보 사장님이 큼지막한 덩어리 고기를 불에 얹고 직접 구워 주셨다. 네 사람은 고기 구워지는 광경을 경건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드셔도 됩니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이것은 매직. 남매는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멜젓도 쌈장도 와사비도 뭐든 궁합이 잘 맞았다.


흑돼지 김치찌개를 주문한 건 신의 한 수. 얼큰하고 뜨끈하고 매콤하고 달큼한 국물에 숟가락이 바빠졌다. 크게 썰은 고기도 국물이 짭조름하게 배어 밥도둑이 되었다. 밥 네 그릇이 금방 깨끗하게 비어졌다. 좋은 만찬이었다.











"어? 대방어 못 먹었네?"


제주공항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우물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는 대방어를 먹지 못했다. 이번에 먹은 것들 중 뭐가 가장 맛있었냐는 질문에 딸은 조개구이, 아들은 근고기, 남편은 다 맛있었다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대방어는 나만 먹고 싶었던 걸까. 아무래도 아쉬웠다. 안녕, 나의 대방어. 다음 겨울에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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