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버킷 리스트 10개 가운데 몇 개는 미리 생각했고 몇 개는 일정 중 갑자기 떠올린 것이었다. 그중 책방 방문은 가장 먼저 미리 계획한 버킷리스트였다.
전직 형사님이 제주에 자리 잡으신 책이 있는 공간에 가고 싶었는데, 작가님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출판사의 게시물을 확인했다. 출입문이 신기한 나라로 들어가는 듯한 신상 책방에 가고 싶었는데, 가급적 동선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이번 여행에서 쉽지가 않았다.
동선이 조금 꼬이더라도 책구름출판사 '나로 향하는 길'에 등장하는 열두 곳의 책방 가운데 제주 책방에 들러 책을 구매하고 싶었는데, 미리 전화로 문의해 보니 그 책이 현재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동선 위주로 책방 한 곳을 정했다.
낮 시간에는 네 명 가운데 둘만 의견을 맞추면 되는 2박 3일이었다. 엄마는 책방에 꼭 가고 싶었고 딸은 차에서 자던 잠을 마저 자고 싶었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하고선 혼자 책방으로 향했다.
마을 이름도 어쩜 지지배배 하기도 하지. 종달리의 골목들을 지나쳤다. 각을 맞춘 듯 안 맞춘 듯 구멍 뚫린 돌들의 담벼락길을 지나 핑크색 책방 간판을 만났다.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수상한 소금밭'이라는 간판도 함께였다.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콧구멍을 크게 벌려 책 내음부터 한껏 들이마셨다. 각을 맞추어 잘 정리된 서가는 공감각적 편안함을 주었다. 내 집이었으면 내 서재였으면 내 책들이었으면, I wish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대부분의 책방에서 마구 튀어나온다. 가로 세로 비율과 크기가 자유로운 창문들에 시선이 가 닿았다. 보름달 서너 개의 조명들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푸릇푸릇 봄이 보이는 창 안쪽으로 세심한 배려들이 가득했다. 숨겨둔 책을 돋보기로 자세자세 살펴보고 책방지기의 큐레이션을 가만가만 읽었다. 읽은 책은 아는 얼굴을 만난 듯 반가웠고 안 읽은 책에는 덜컥 호기심이 일었다.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들은 멤버분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일부러 폰에 담았다.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는 책들을 만나는 우연은 농도 짙은 즐거움이었다.
짧지만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고심 끝에 한 권을 골랐다. 책 제목은 해방의 밤. 소심하지만 소박한 나들이. 나의 해방이었고 나를 향한 추앙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