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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낫 디톡스

제주 버킷리스트 6) SNS 디톡스

by 씬디북클럽




디지털 디톡스 digital-detox


디지털에 중독된 현대인의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을 하는 요법










제발 폰 좀 그만 볼 수 없어? 애들한테 책을 읽으라고 하려면 엄마아빠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맨날 소파에 누워서 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애들한테 폰 그만하라고 할 순 없지 않아? 폰 보려면 텔레비전은 꺼주면 안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부가의문문들. 조용히 폰을 내려놓고는 노트북을 켜는 남편. 얼핏 비치는 무한맵. 아, 노트북을 확 덮어 버릴까.






폰을 놓지 못하는 사람을 (심하게 표현하면) 혐오했었다.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하고 의지가 약하며 전자기기 중독자로 치부했었다. 나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상대가 폰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상했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나를 만났나 마음이 불편했었다.



모든 문장들은 과거 완료. 그렇다, 나는 꼰대였다. 그것도 현대 디지털 문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걸어가면서 폰을 보는 사람은 아이든 어른이든 불안해 보였다. 눈 뜨자마자 폰을 찾고 잠들기 직전까지 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 역시 폰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폰을 보는 습관은 나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닌 경우에도 폰을 곁에 두고 열고 찾았다가 빠져나오질 못하곤 했다. 시간뿐만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인 면에서도 물론이었다.



특히 인스타를 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새벽 기상을 포함해 매일 2개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또 다른 강박이 되었다.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나를 포장하는 가운데, 오늘은 어떤 사진과 글을 올릴까 하는 즐거움은 서서히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어? 나는 이 사람 피드에 좋아요를 눌러주었는데 이 사람은 왜 내 것을 보고 안 눌러 주었지? 이 사람은 나보다 팔로워 수도 적은데 좋아요 수는 이렇게나 많지? 팔로워 수에 집착하고 빨간 하트 수에 연연다. 습관적으로 앱을 열고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감정 없이 하트를 누르는 내 모습,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이의 화려한 일상은 부럽기도 했지만, 영감을 얻고 동기 부여가 될 때가 많았다. 책 리뷰를 보면서 그 책에 대한 호기심과 독서욕구가 일었다. 서평단이나 북토크 행사 등의 정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자주 만나기 힘든 인친들의 일상에서 공감을 주고받고 싶었다. 열심히 붙잡고 있지도 쿨하게 내려놓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였다.





제주는 이제 충분히 1일 생활권이다. 가깝고도 친숙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환상이 더 많은 곳이었다.



제주 여행 동안 sns를 하지 말아야지.

폰을 덜 보고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쳐야지.

들고 간 책들을 챙겨 읽어야지.

검색은 나중으로 미루어야지.

디지털 디톡스를 버킷 리스트에 넣었다.


결과는, 역시나 어중간했다.







사진 찍기도 (화장했을 시) 찍히기도 좋아하는 마음은 제주든 어디든 어쩔 수 없었다.



음식이 나오면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한다. 여기는 사진이 잘 나오겠다 싶은 곳에서는 반드시 여러 각도로 찍어야 한다. 확인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찍어야 한다.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단, 사진 찍는 횟수를 줄였다. 10번 찍고 싶은 것은 네댓 번으로, 네댓 번 찍고 싶은 곳은 한두 번으로 줄이려 무진장 애썼다. 정말, 나름 애썼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 가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얼른 인스타에 올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어떤 글을 남길까, 짧게 센스 있는 단어들을, 길게 의미 있는 문장들을 고민했다. 폰으로 사진 찍는 나를 이겨먹을 수는 없었다. 대신 인스타에 게시물 올리려는 강박에는 한번 이겨 보기로 했다.



게시물 말고 스토리에 올리면 딱 24시간만 노출이 된다. 스토리에 여러 장을 동시에 올리는 기능을 이제야 발견했다. 하루를 보낸 후 주르륵 연달아 스토리를 올렸다. 본인들 사진 올리기를 꺼려하는 남매의 나만 보기 아까운 사진들도 스토리에 맘껏 자랑했다. 쓰고 싶은 글을 단어만 끄적거려 두었다. 다녀와서 나중에 한 번에 써야지 하고 미뤄 두었다. 그리고 그걸 지금 연달아 쓰고 있는 중이다.



인스타는 그렇다 치더라도 폰이 필요한 상황은 수시로 있었다. 맛집 동선 시간 정보 등을 위해 폰을 놓지 못했다. 집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디지털 디톡스 인 제주는 대실패였다.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안경과 폰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 카톡이나 인스타 앱에도 여전히 자주 여닫지만 횟수를 줄이려 한다. 사진을 최소한으로 찍고 가급적 눈에 담으려고 애쓴다. 쿠팡플레이의 드라마 몰아보기 1시간 영상은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 개면서 자투리 시간에만 본다. 숏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자려고 누워서는 절대 폰을 보지 않는다.



10번 여는 앱을 네댓 번으로 줄였다.

네댓 번 여는 앱을 한두 번으로 줄일 수 있을까.

한 번씩은 폰 없이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 상상한다. 나만 없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없는 거라면? 안 괘안치 않은 상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공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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