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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in 유리냄비

#22 서툰

by 씬디북클럽

#22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서툰 모습에 대해 써보세요.



타국에서 만난 부산 오빠와 단둘이 떠나는 첫 여행지는 뉴질랜드의 숨겨진 보석, Bays of Island. 북섬에서도 북으로 북으로, 휴식과 모험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에서도, 막 사랑을 시작한 우리에게는 둘만 보였을지도.



술을 좋아하는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첫날의 메뉴는 부대찌개. 먼 길까지 공수한 하숙집 김치와 각종 양념, 근처 마트에서 산 참치캔과 햄을 유리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나만을 믿고 있는 K 장남 출신의 저 남자는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좋아, 나만 믿어! 내가 실력 발휘 해 보지. 있는 솜씨 없는 솜씨('솜씨'라는 단어를 쓰기에 말도 안 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온갖 솜씨를 부려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신김치가 좋을 것 같긴 한데 이 김치는 많이 익은 게 아니라 그런가. 오래 끓이면 국물이 우러나 괜찮을 거야. 다시다라도 챙겨 올걸. 이미 늦었어. 어떻게든 되겠지. 지글짝 보글짝 사골 우려내듯이 얼마나 끓였을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유리 냄비가 폭발해 버렸다. 숙소의 냄비인데 물어줘야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보다 우리 오늘 저녁 당장 뭐 하고 소주를 마시지 하는 염려가 저만치 앞서 달려갔다.



깔깔 웃는 부산 오빠 앞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더랬다. 그날 무슨 안주로 한 잔을 했던가. 날 보고 귀엽다고 볼을 살짝 꼬집어 주던 그와 두 번째 키스를 했던 것만 기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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