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과 한숨 사이

#9 한약

by 씬디북클럽


아이의 방문은 요즘 자주 닫힌다.


예전에는 노크도 없이 들어가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성이다가 발걸음을 돌릴 때가 많다.


안에서는 문제집을 넘기는 소리인지, 휴대폰을 만지는 소리인지 구분되지 않는 작은 기척이 이어진다. 손끝에 닿는 책상 모서리의 차가움, 바닥에 흩어진 펜과 연습장, 그 사이사이 아이가 남긴 공기 냄새까지, 나는 모두 세밀하게 느끼면서도 쉽게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저녁을 차려놓고 아이를 부를 때마다, 나는 매번 비슷한 문장을 고른다. 너무 다그치지 않으면서, 너무 무심하지도 않은 톤을 찾아 헤맨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려 애쓰면서,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이를 이해하려는 걸까, 아니면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걸까.


“약 먹었어?” 하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찡그린 얼굴과 침묵뿐이다.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약봉지의 은박지는 작은 빛을 반사하며 눈에 들어온다. 봉지를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손, 약간 구겨진 종이 포장지, 그 모든 디테일이 눈앞에 있음에도, 나는 굳이 개입하지 못한다. 귀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 너머, 불편한 마음이 숨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 순간,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고3 시절, 아침마다 식탁 위에 놓였던 갈색 한약 봉지. 억지로 뜯어 삼켰던 쓴맛, 입 안에 남은 텁텁함, 엄마의 한숨 섞인 눈길.


그때 나는 왜 그 모든 게 그렇게 싫었을까.

쓴맛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와 걱정이 숨 막히게 느껴졌던 걸까.


지금의 나는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아이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자꾸만 가슴이 무겁다.

오늘도 나는 약봉지를 그대로 두고, 조심스럽게 한마디만 건넨다.


“먹는 거, 잊지 말고.”


그 말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혹은 그저 습관이 되어버린 반복인지, 나도 알 수 없다.


아이는 책에 집중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아이를 동시에 떠올리며 또 한숨을 삼킨다.


이 작은 순간 안에는 여러 세대가 겹쳐 있다.

지나간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아이.

모두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시간. 숨결 하나,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미묘한 거리감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오늘을 살아낸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마음, 이해하지 못한 감정, 살짝 삐걱거리는 관계.

이게 지금 나의 현실이고, 어쩌면 당분간 그대로일 것이다.








"2025년 6월 21일 도서출판 담다에서 출간된 강소영 작가의 '사랑이라는 시절'에 대해 알려줘."



챗 GPT에게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뭉뚱그려 답이 될 수 있는 답을 주더군요. 부모를 향한 사랑인데, 연인 간의 사랑이라고 해석한 건 땡. 너 내 책 읽어보긴 한 거 맞니?


"강소영 작가의 글에 대해 분석해 줘."


큰 기대 없이 질문해 보았습니다. 여러 키워드를 제시하며 그럴듯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짓더군요.


"한 줄로 정리하면 강소영 작가의 글은 사랑을 ‘경험’이 아니라 ‘시간의 결’로 기록하는, 절제된 감성의 에세이입니다."


음, 마음에 듭니다. 너, 나 알아보는구나?

이어서 질문을 또 해 보았습니다.


"고3 아이를 둔 엄마로서 현재의 아이를 통해 과거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돌아보는 에세이를 쓰고 싶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한약 먹으라는 엄마와 거부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써 줘."


"에피소드 중심의 글을 좀 더 써 줘."


이렇게 해서 나온 글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조금 매끄럽지 않은 부분 (은박지...?)이 없진 않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얼추 비슷합니다. 글을 쓰며 챗 GPT에게 도움을 청한 적은 맹세코 처음입니다. 생각보다 훌륭해서 살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주제로 저만의 글을 써 보겠습니다.


저는 챗 작가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