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한 첩, 한숨 두 첩

#9-1 한약

by 씬디북클럽



아이 얼굴을 까먹었습니다.

얼굴을 제대로 본 지 오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씻으러 갔다가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아침밥도 방으로 넣어 드니다. 등교 준비(라고 쓰고 '화장을'이라고 읽습니다)를 하며 집어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아침밥이죠. 계란밥, 유부초밥, 주먹밥, 떡국 등과 과일 두어 조각을 쟁반에 담은 초미니 식단입니다. 김밥 일곱 개를 보내면 한 개를 남기길래 6개를 넣었더니 또 한 개가 남습니다. 입맛이 없다 합니다.


저는 아이 얼굴을, 아이는 식욕을 잃었습니다.


이만큼 키웠으면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육아는 끝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입는 건 알아서 입고, (늦게 자고 첫 알람에 못 일어나서 문제지만) 자는 것도 알아서 잡니다. 문제는 먹는 겁니다. 밖에서는 삼각김밥이나 고카페인 음료로 끼니를 때웁니다. 모처럼 집에 와 먹는 날에는 스트레스 푼다는 이유로 불닭볶음면이나 크림 우동 등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먹습니다. 본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동안, 체력 약한 아이를 둔 엄마는 스트레스가 쌓여 갑니다.


어릴 적부터 입이 짧은 아이를 억지로 먹이기는 실패했습니다. 좋아하는 거라도 많이나 먹어라 싶지만, 가뜩이나 체력 관리가 중요한 시기인지라 신경이 쓰입니다. 밀가루나 자극적인 음식 말고 단백질 위주 고기를 먹이고 싶은데 그 역시 마다합니다.


어릴 적부터 시판 홍삼을 먹였습니다. 두어 계절이 넘어갈 때, 학년이 올라갈 때 연령에 따라 알록달록 색이 바뀌는 홍삼을 먹였습니다. 한약을 제대로 지어 달여 먹이지 그랬냐고요? 물론 그랬지요. 하도 안 먹어 잘 먹게 한다는 한약을 일부러 찾아가 지어 왔건만, 그 약을 먹이는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아이와 씨름하다가 들배지기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만 엄마, 바로 저입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이건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의지는 아이의 몫이라는 것을요.


먹고 싶은 음식, 복용하고 싶은 약 종류 물어도 다 거부하는 아이를 위해 '고삼홍삼'이란 시판 액상 홍삼을 구입했습니다. 배도라지즙도, 유산균도 구입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세 개를 쭉 짜서 후다닥 먹자 어르고 달랬습니다. 아침에는 다녀와서 먹겠다고, 밤에는 내일 아침에 먹겠다고 합니다. 밤에 안 먹었기에 등굣길 가방 안에 넣어 보냈더니 고대로 들고 옵니다. 방을 청소하다 수십 개의 약을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바깥은 봄인데 마음은 여전히 시린 겨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학창 시절에 한약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새벽부터 밤까지 용달차를 모는 트럭 운전수였고, 엄마는 아빠가 매일 들고 오는 지폐를 모아가며 틈틈이 직업을 바꿔가며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풍족한 사랑을 받았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한 집안이었습니다.


"내일부터 이거 한 팩씩 아침저녁으로 먹어."

"싫어, 안 먹어. 먹기 싫어."


어느 날 냉장고 가득 한약이 담겼습니다. 뜯어서 먹기 좋은 팩 형태로 밀봉된 것이 수십 개, 그 양에 압도되었습니다. 진맥을 짚으러 가려해도 시간이 나질 않아 엄마가 알아서 지어왔다고 했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약이었습니다. 수험생 전용 이른바 '총명탕' 같은 것이었을까요. 당연히 쓰고 당연히 맛이 없었습니다. 맛없는 약을 인상 찌푸려가며 몇 번 받아먹었습니다.


아침밥은 안 먹고, 학교에서 두 끼를 먹은 후 집에 와서는 동생을 시켜 라면을 두 개씩 끓여 먹던 식습관이 굳어졌을 때입니다. 엉망인 몸을 돌보는 먹거리라고는 하루 중 딱 그 한 팩이었을 텐데, 저 왜 그리 온몸으로 뿌리쳤을까요.


집안 형편에 차고 넘치는 비용을 들였을 게 뻔했습니다. 그러면 먹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말에 냉큼 지어 와 내미는 엄마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엄마를 안 쳐다보고 약만 먹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거 먹는다고 바닥을 치고 있는 성적이 오를까 의심했습니다. 일단 한 달치라도 먹어보고선 판단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다 싫고 짜증 나고 불편했습니다.


저는 그냥 그러한 시절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밀어낸 약을 조용히 동생이 꺼내 먹었습니다. 어릴 때도 어른들이 박카스나 활명수를 마시고 나면, 옆에 있다가 한 방울이라도 남았나 입에 털어 넣던 동생이었습니다. 누나의 고3 한약을 쭉쭉 빨아먹은 남동생은 그해에 가장 많이 쑥쑥 커버렸습니다.






“약, 꼭 챙겨 먹어.”


귀가 후에도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듭니다. 방문이 닫히기 직전, 눈앞에서 약을 먹이는 데 또 실패했습니다. 세 개의 작은 약을, 아이 방문 앞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덜어낸 목소리로, 한마디만 덧붙입니다. 너무 따뜻하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그 사이 어딘가를 찾는 일도, 매번 쉽지 않습니다.


한숨은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안으로 접어 둡니다. 주로 비정한 방문 앞에서 다정함은 연습이 아니라, 거의 훈련에 가깝습니다.


한때는 저도 같은 문을 닫던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그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일이 더 어렵습니다. 이해는 되는데, 이해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문 앞에 내려둔 약이 사라져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먹어서가 아니라, 제가 다시 묻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면서요.


오늘도 쓰디쓴 마음으로, 늦은 잠자리에 듭니다. 한숨도 한 첩쯤 줄어 있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 Brain Retual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