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질문에도 쉽사리 동그라미를 치기 힘들었다. 일단 질문들부터 읽어 보자.
Q. 하루 중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 되십니까?
Q. 어머니와 자녀의 대화 (친밀도)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Q.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 (친밀도)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Q. 자녀의 학업성취에 대한 학부모님의 만족도는 어떠하신가요?
Q. 자녀가 일 년 동안 가장 발전했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Q. 학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정분위기는 어떠한 편인가요?
Q. 학부모님께서 가정생활과 관련해서 자녀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은 어떤 것인가요?
아주 친함/친한 편/보통/안 친한 편/아주 안 좋음
자녀의 가장 큰 장점, 단점에 대한 칸이 이어진다. 혹시나 싶어 뒷면을 넘겨보니 옴마야, 그 외 특이사항 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꼬꼬마 유치원 새 학기에도 이렇게 넓은 칸은 없었던 것 같은데.
졸업을 앞둔 최고 학년이라서 그런가. 담임 선생님이 꼼꼼하신 분인가. 커다란 4절지에 다음 주까지 그림 그려 이름 써서 내던 미술 대회 생각이 났다. 200자 원고지를 채워 가던 논술 모의고사 생각도 났다. 어찌나 빨간펜 첨삭이 수두룩했었는데. 실은 한 번도 A+를 받은 적은 없었다.
조용한 새벽
하얗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A4 용지 한 장과 마주 앉았다.
길게 망설이다가 엄마와의 관계 질문에 '아주 친함'이라고 동그라미부터 쳤다. 다음에 같은 질문이 나온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같은 답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동그라미 안에 채워 넣었다.
아직 일면식도 없는 담임 선생님이 읽을 글을 쓰려한다. 어쩌면 그이는 전혀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기 초 제출해야 하는 양식들 중 하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대강 칸만 채우든가 그냥 비어서 내든가 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제출 여부만 체크해서 파일 하나에 꽂히고 나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렇게 동그라미 하나 글자 한 자 고민하는 이유는, 내가 채워 낸 이 종이를 '우리 아이'가 가장 처음 받아 들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이는 한 자 한 자 열심히 읽어볼 것임을 알고 있다.
마감 기한이 글을 쓰게 만든다. 지금부터 쓰겠다. 지난달 가장 집중한 글쓰기가 자소서였다면, 지금 내 앞의 이 한 장이 이 달의 집중한 글쓰기가 되리라.
새 달, 새 마음으로 글을 쓴다. 심호흡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