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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Oct 06. 2016

아우성

고대 카톡방, 서울대 카톡방을 보며 나는 개탄했다. 나는 그 방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그 대화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일상적인 것인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적나라한 진실을 마주할 자신도 없다. 나도 어딘가에서 그렇게 잘근잘근 씹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나는 생각했다. 정말 그중에는 단 한 명도 이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용기 있게 말할 송곳 같은 자는 없었을까.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에 그것도 대한민국 Top 3 안에 든다는 대학에 다닌다는 자들의 생각과 언어는 그렇게 천박하고 몹쓸 것인가. 


페미니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보면 남성은 남성 간 유대를 중요시하는 '호모 소셜'의 성향이 짙은 사회적 동물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인정보다는 자신이 속한 남성 집단 속에서 그들로부터의 '남자다움'을 인정받는 것에 목숨을 건다. 호모 소셜적인 연대란 성적 주체=남성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성적 주체인 남성들은 여성의 성을 객체화하고 서로 자신들의 성적 주체성이 얼마나 확고한지 상호 확인하는 의식, 즉 음담패설, 집단 윤간 등을 통해 이를 더욱 굳혀간다. 


그러한 의미에서 고대 카톡방, 서울대 카톡방에서 이뤄진 대화는 서로의 수컷 됨을 확인하는 장이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음담패설은 그들끼리의 은밀한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겠지만 오늘과 같이 디지털 시대에서는 이 상호 확인 의식이 온라인 혹은 모바일 상으로 그대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를 실제 입증할 수 있는 여성의 사진이나 여성과의 대화 내용들이 캡처되어 오고 가게 된 것이다. 살기 좋으라고 만든 기술일 텐데 어째 더 살기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동물들도 자신의 '남성다움'을 뽐낸다. 그것은 자신의 갈퀴를 한껏 펼쳐 보인다거나 자신의 빛깔을 뽐내는 데에서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최상위 개체는 그 '남성다움'을 뽐내는 방식이 아주 구질스러워 불쌍할 지경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말과 언어라는 엄청난 선물을 여성을 객체화하고 희생시키는 데에 쓴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다. 


성의 언어도 매우 남성 중심적이어서 여자들은 성적 언어를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워할 때가 많다. 책에서 정확히 예로 든 것은 남자와 여자가 자면 '보지 따먹는다'하고 하지 '자지 따먹는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남성은 성의 주체이고 여성의 성은 객체화되어 있다. 여자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남자들처럼 자유롭게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성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형태를 띨 경우가 많다.


다시 나의 원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음담패설, 집단 성폭행을 자행하는 남성 무리 속에서 정말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남성은 한 명도 없었을까? 뼛속까지 '호모 소셜'인 남자들은 그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용기보다 말했을 때에 그 연대 속에서 배척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침묵하거나 스스로 악마가 되길 택하는 것이다. 


남성들의 성향이 원래 그러하니 이해하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이럴 바엔 여자들도 우리만의 (천박하지 않고 고급스럽고 예쁘게) 성적 언어를 만들어서 대놓고 말하고 씹고 남성들의 성도 객체화 좀 해보면 후련할까. 우리도 할 말 많을 것 같은데 말이다.


구성애 선생님은 분명 '아름다운 우리의 성'이라고 했는데 남자들의 아우성은 대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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