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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Dec 21. 2016

편지할게요

요 며칠 많은 편지를 썼다. 업무적인 편지가 훨씬 많았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직접 손편지를 쓰니 감회가 새롭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나는 키보드가 더 익숙하지 펜을 든 손은 영 어색하다. 안 쓰던 손가락 근육들을 쓰려니 손이 다 아프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꽤 많은 노동을 요했다. 카드를 직접 준비해야 하고 우표도 사 와야 한다. 글씨가 밉지는 않은지 내심 신경 써야 하고 여러 장을 쓰자니 내용도 중복되지 않게 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편지를 받는 상대를 떠올리며 할 이야기를 떠올려야 했다. 추억이 많은 이들이라면 이 과정이 쉬웠지만 얕은 관계, 특히나 업무적으로 엮인 이들에게 쓸 때는 퍽 어려운 일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여차저차 편지를 다 쓰면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적는다. 내가 주소를 다 외우는 것도 아니고 주소를 찾고자 메일을 뒤적거리고 받았던 명함을 들춰보며 상대방의 사는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인들에게 이를 빌미로 문자도 보내보고 오랫동안 연락 안 했어도 이 핑계로 멋쩍게 인사도 해본다. 주소를 통해 알게 된 사는 곳을 살펴보며 '아, 이 분 사는 데는 지금 엄청 춥겠구나. 아, 하와이는 캘리포니아만큼 따뜻한가?' 따위의 생각도 곁들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와의 지리적 거리를 가늠하여 '이 편지가 언제쯤 가 닿겠구나.'하는 계산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손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감동스러울지 그 찰나의 순간과 감정도 잠시나마 상상해본다.  


별 거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이 총 결합된 손편지를 쓴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 사람만을 위해 그 몇 분을 쓴다. 누군가 먼 타주에서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단 몇 분이라도 온통 나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황홀하다. 내게는 그렇다. 나는 이런 편지를 전하는 데에 단 돈 몇 전, 국제우편이라도 1달러밖에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우정 시스템에 새삼 놀란다. 우정을 지키라고 이름도 우정인 것 같은 우정국은 그리 오래도록 값도 올리지 않고 존재하나 보다. 이 편지들을 잘 전달해주실 우체부 아저씨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본다. 더욱이 연말에 보너스도 아닌 일 폭탄을 드린 것 같아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쓰면서 답장률 10%도 안 될 것 알지만 매년 쓰는 나 자신도 조금 칭찬해주었다. 언젠가는 지쳐 떨어지겠지 싶다. 디지털 시대에 이놈의 아날로그 짓거리. 투정하려고 썼는데 막상 쓰고 보니 이 짓거리에 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아 나 스스로가 이 짓거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현의 '편지할게요' 노래에서 편지쓰기는 글씨로 사랑을 만드는 길이요, 소리없이 내 마음을 채우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 밤도 소리없이 내 마음을 채웠더니 든든한 기분마저 든다. 이렇게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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