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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May 21. 2016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잔인한 말

#8_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면 모든 시련과 고통이 견딜만한 것처럼 참 많이도 써댔다. 너에게 나 스스로에게. 아프지 않으면 성숙해질 수 없는 것 마냥 아픔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공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문득 내가 그때에 그렇게 아파서 그렇게 힘들어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아니, 사실 그건 다 핑계였다. 아팠으니까 난 이제 더 이상 아프면 안 돼. 이만큼 힘들었으면 된 거지. 그래 이제 나한테는 좋은 일만 생길 거야. 나는 아픔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그 아픔 이후에 올 것들에 대해 그리고 아팠던 만큼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자기 위안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겪는 온갖 종류의 고통에는 그 이유가 없을 때가 많다. 그 고통이 왜 자신에게 왔는지 그래야 했는지에 대해 백번 물어봤자 신은 대답이 없다. 그 대신 '이제 넌 성숙해질 거야'라는 어쭙잖은 위로들만이 귀에 박힌다. 


나는 피할 수만 있다면 모든 아픔은 피하고 싶다. 아프지 않고서도 충분히 성숙할 수 있다. 아프지 말아도 되는데 아프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팠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로 위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남역의 한 공동화장실에서 스러져 간 청춘을 두고 마음이 계속 무겁다. 그녀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위로가 내 마음을 더 찌른다. 그녀는 애초에 아플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당했을 살이 찢기는 아픔과 축축한 화장실 바닥에서 미치광이를 앞에 둔 공포는 우리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 맞바꾼 그런 것이 아니다.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서 지금도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그녀를 생각한다. 잔인한 5월이다. 슬픔이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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