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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Aug 29. 2019

언제나 사람이 먼저다

이럴 땐 절대 앞 차를 재촉하지 말 것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기본을 중시한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라고 굳게 믿었던 독일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선입견은 독일에 온 지 며칠 안되어 어김없이 무너졌다.

특히 운전을 하다 보면 여기가 내가 알고 있던 독일 맞아?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심심하면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신호가 바뀌었는데 조금이라도 어물쩡거린다 싶으면 무섭게 클락션을 울려대는 뒤차들,

정규 속도보다 살짝 느리다 싶으면 뒤꽁무니에 바짝 따라붙다가 위험천만하게 앞차를 추월하는 사람들...

 

자동차의 나라임은 틀림없으나 운전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런 독일 사람들도 절대 앞 차들을 재촉하지 않는 경우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앰뷸런스가 지나갈 때


이곳 앰뷸런스 소리는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매우 크다. 앰뷸런스 경고음에 놀라 추가 사고를 낼 수도 있을 정도다. (덧, 우리나라에서는 앰뷸런스 소리를  '삐뽀삐뽀'라고 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타튜타타'라고 한다. 발음이 엄청 귀엽다)


어쨌든 긴급차량 소리가 들리면 서행은 물론이고, 갓길에 바로 정차해야 한다. 차선이 여러 개 있는 큰 도로에선 보통 2차선을 비워준다. 고속도로가 꽉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긴급상황을 대비해 차선을 비워두는 게 정석이다. 버스 등 대중교통차량 뒷 창문 또는 고속도로 길목 중간중간에서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종종 볼 수 있다. 

 

교통체증 시 구조도로 확보!





둘째, 자전거가 앞서 갈 때.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량'으로 구분된다. 이 말인즉슨 자전거도 기본적으로 차도로 달려야 하며, 차량 신호를 따라야 한다는 소리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경우는 1) 도로에 별도의 사인이 있거나, 2) 10세 이하의 아동일 경우다(이 중 8세 이하는 인도에서'만' 자전거 통행이 가능하다).  


(좌측부터) 자전거 전용도로, 보행자-자전거 겸용 도로, 보행자-자전거 분리형 겸용도로, 자전거 진입 가능 도로


아무리 자전거를 잘 탄다고 해도 속도에는 한계가 있을터. 완만한 오르막길이라도 주행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독일 동네 골목은 보통 매우 좁은 2차선 도로이기 때문에 빨리 가려면 반대편 차량이 없을 때 잽싸게 중앙선을 넘어 자전거를 추월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자전거 뒤편에 서있는 차량들은 마냥 서행할 수밖에 없다. 꼬리를 얼마나 물고 있던지 말이다. 자전거 바로 뒤차가 어물쩡 거리고 있으면 인내심이 바닥난 그 뒤의 차가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추월할지언정 절대 앞차에게 클락션을 울려대지 않는다. 


경찰 아저씨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독일 자전거 법규




셋째,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사람이 있을 때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근처에 사람이 서있다 싶으면 바로 차를 세운다. 

말 그대로 '사람이 먼저다'.


우리나라에서처럼 길을 건널 때 좌우를 살피고 차가 없으면 재빨리 뛰어간다던지, 보행자와 차가 대치상태가 되었을 때는 슬금슬금 발/바퀴를 횡단보도에 들이밀며 누가 더 먼저 갈지 눈치게임을 하는 경우는 없다. 무조건 길 건너는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보행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양 옆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부주의(?)하게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어차피 사람이 먼저고 차들은 다 설 것이라는 믿음, 서야 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단,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무조건 신호를 따른다. 사람이 있건 없건, 차가 있건 없건 신호를 따라야 하는 게 정석이다. 빨간불에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은 욕을 들어먹어도 싸다. 


아직도 차가 사람을 피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차를 피하는 게 익숙한 나는,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이 서있는 횡단보도를 지나갔다가 욕을 들어 먹었다. 아 자괴감 든다.




덧) 운전 중에 욕... 어디까지 먹어봤니?


모르긴 몰라도 독일 사람들은 욕에 대해서만은 창의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현란한 말솜씨로 등줄을 오싹하게 만드는 쌍욕을 하기보다는(어차피 해도 내가 못 알아들음), 단순한 제스처로 '너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니'를 표현하는 정도다.


다만 온 몸뚱이를 활용해 제스처를 매우 크게,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처음 당하면 좀 쫄 수 있다. 익숙해진다면 어깨를 으쓱하는 정도로 대꾸해주면 된다. 가운뎃손가락은 벌금형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심한 욕이라고 하니 주의할 것!


너 미쳤냐?

                                                                                                 일러스트/Work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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