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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Aug 29. 2019

똥 좀 마음대로 누게 해 주세요, 네?

각박한 독일의 화장실 인심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고민을 풀 수 있다는 해우소(解憂所). 



바라만 봐도 모든 고민과 번뇌가 사라진다.. 나미아비타불 관세음보살...


하지만 이 곳 독일에서는 외출할 때면 화장실 걱정으로 골치만 아파오는데..


장트러블이 유달리 심한 나는 주요 동선 내 모든 화장실과 출입 방법을 꿰고 있다. 

한국에서는 집-회사-마트를 비롯해 그 외 여러 출몰 장소는 물론이고 지하철 역 내외/버스정류장 근처 건물들/고속도로 휴게소 간 거리에 이르기까지 눈 감고 화장실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도 본능적으로 화장실이 있는 곳부터 파악해 놓는다.


내 머릿속의 화장실... 

이미지/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




이 곳에서 살며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건 언어도 아니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아닌 바로 외출 시 화장실 이용이다. 공중 화장실은 유료가 기본이며, 그마저도 잘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중 화장실의 기본 사용금액은 20~50센트가량. 한 번의 근심을 해소하는데 그렇게 큰돈은 아니지만, 만날 공짜 화장실만 이용하다가 돈을 내려니 단 돈 십 센트도 아깝게 느껴진다. (적은 돈이지만 세상 아깝다 느끼는 3가 지가 은행 수수료, 마트 봉투값, 버스 환승비 아니었던가! 이제 화장실 이용료도 포함시켜야겠다.)


일반 공중 화장실에는 출입구 한편에 돈을 넣는 접시가 마련되어 있다. 볼일을 보고 나올 때 여기에 원하는 만큼 놓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물론 돈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화장실 이용이 흡족하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상관없다!), 화장실에 상주하는 미화원이 끊임없이 고객들의 눈을 마주치면서 접시를 관리하기 때문에 웬만한 똥 배짱 아니고서야 그냥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예외가 아니다. 휴게소 화장실은 출입문 자체가 지하철 개찰구처럼 되어있어 자판기에 돈을 넣어야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용 금액은 보통 70센트인데, 이중 20센트는 화장실 이용료이고, 50센트는 바우처로 돌려받는다. 휴게소 편의시설(편의점, 패스트푸드 등)을 이용할 때 사용하면 된다. (보관해 뒀다가 다른 휴게소에서도 사용 가능) 


주요 기차역의 화장실도 물론 유료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한 방식으로, 1유로를 결제하면 50센트의 바우처를 받는다. 


지하철 아니고 화장실 입구다
마음이 급하면 지나치기 쉬우므로 바우처는 꼭 챙겨가세요



일반 레스토랑/카페에서는 손님 외에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가 없으며,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의 경우에도 화장실 관리인이 상주한다. 페스티벌 등 임시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경우 임시 이동 화장실이 운영된다. 유료인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인색하고 각박하기 짝이 없는 독일 화장실이지만, 유료로 운영되는 만큼 장점도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 청결하다. 


화장실 자체가 낡았을지언정 냄새가 나거나 쓰레기통이 넘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휴지도 넉넉히 구비되어 있다. 사실 화장실 이용료는 쾌적한 환경에서 볼 일을 보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 거라 생각하면 된다.

우와아아~~ 시트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둘째, 참을성을 기를 수 있다.


유료고 무료고 간에 화장실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하며, 그것만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목표의식도 함께 고취된다. 비슷한 장점으로 신앙심의 발현 및 극대화도 꼽을 수 있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이시여...


셋째, 기회는 찬스다를 체화할 수 있다.


화장실 가기가 워낙 힘들다 보니 (화장실 수 보다는 심리적인 barrier가 더 크긴 하지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만 나타났다 하면 요의가 없어도 무조건 화장실을 이용한다. 두 아이까지 끌고 다녀오면 왠지 돈을 번 느낌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무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무료로 화장실이 개방되는 곳도 몇몇 있다.


중대형 마트

 레베(Rewe), 레알(Real), 로스만(Rossman) 등의 마트에는 고객용 화장실(Kunden WC)이 꼭 한 칸씩은 있다.  (다만 문에 화장실 표시가 없거나 건물 안쪽에 숨겨져 있어 찾기가 어렵다. 열쇠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마트에 갔는데 심상찮은 소식이 들려온다면 계산대 점원에게 매우 미안한&급한 표정으로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열쇠를 내어줄 것이다.


패스트푸드점

나의 사랑 맥도널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점은 대부분 무료로 오픈한다 (I am loving it!)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체인점에서는 물건 구매 후 영수증에 나와있는 비밀번호로 출입이 가능한 곳도 있다


미술관/박물관

대부분의 미술관/박물관은 지상층에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한다.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레스토랑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식당 이용객들을 위한 화장실을 눈치껏 이용해보자. 


이외에도 교회, 광장, 역사 등에서 간간히 무료 화장실을 찾을 수 있다. 주요 관광지에서는 여행 가이드가 마치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무료 화장실 위치를 공유하기도 한다.




한참 쓰고 났더니 화장실 다녀올 때가 됐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아무 때고 화장실을 쓸 수 있는 우리 집이 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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