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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Nov 05. 2019

빈 병은 어디에 버리나요?

쓰레기 버리는 것도 일이네

독일에 온 지 며칠 안된 시점에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당황할 것 투성이었으나, 그중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쓰레기 처리'였다.


아무리 안사고 안 쓴다고 하는데도 왜 버릴 건 금방 넘쳐나는지..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년도에 방영했던 KBS <인간의 조건>  쓰레기 없이 살기 편. 함께 경악했던 기억이..



최소한 완벽히 시차 적응을 하기 전까진 가능한 아무 일도 하지 말자는 다짐이 무색하게 사흘이 지나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쓰레기가 쌓였다. 결국 양손 가득 버릴 것들을 들고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까만 뚜껑은 일반 쓰레기, 노란 뚜껑은 재활용 쓰레기, 파란 뚜껑은 종이류.. 음식물 쓰레기는 작은 갈색 통에 버리면 되는구나, 음 쉽군.


우리 아파트 쓰레기장


이제 유리병만 버리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순간. 어, 이건 어디에 버리지??


꽤 묵직한 유리병들을 손에 든 채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침 윗집에 사는 남자를 마주쳤다. 


"저기.. 빈 병은 어디에 버려요?" 수줍게 질문했더니 그 남자,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유리병 버리는 곳은 따로 있단다. 


집과는 다소 떨어진 공원 근처에 무언가 거대한 통들이 서있었는데 바로 거긴가보다. 


커다란 쓰레기통에는 병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마한 입구가 세 군데 있다. 흰색, 초록색, 갈색. 병 색깔에 따라 한 병씩 넣다 보니 어느덧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병을 수거할 땐 이 거대한 통을 기중기 같은 걸로 번쩍 들어 하단에 있는 문을 열고 탈탈 털어낸다. 장관이 따로 없다



모든 미션을 마치고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절한 윗집 남자를 한번 더 마주쳤다. 


"판트는 알지? 플라스틱 병이나 캔은 마트에서 버려야 해." 


아니, 이건 또 무슨 얘기란 말인가.. 당황하지 않은 척, 괜히 고개를 더 까닥거리며 아는 척을 했다. 


"응. 물론 알고 있어!"




판트(Pfand, P는 묵음이다)는 공병 재활용을 독려하기 위해 2003년부터 도입된 보증금 시스템이다. 


독일에서는 음료수 구매 시 대부분의 경우 병 값이 추가로 청구된다. 


예를 들어 물 한 병에 50센트라도, 실제 계산 시에는 공병 보증금 25센트를 더해 75센트를 내야 한다. 추후 빈 병을 다시 가져가면 해당 금액을 돌려받는다. 보통 페트병과 캔의 보증금은 25센트(약 330원)이고, 유리병은 8센트(약 100원)다.


판트가 있는 병들에는 재활용 아이콘이나 'Pfandflasche'라고 표시되어 있다.


판트에 해당되는 빈 병들은 마트 입구에 위치한 공병 수거기(Leergutautomat)로 가져간다. 


병을 기계에 넣으면 해당 판트에 따라 바코드가 출력되는데 그걸 계산대(Kasse)에 제출하면 현금으로 캐시백을 해주거나 물건을 살 때 해당 금액을 차감시켜준다. 꼭 당일에 쓰지 않아도 되고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써도 된다.


용기가 구겨졌거나, 포장지가 뜯어졌거나, 안에 내용물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인식이 잘 되지 않으므로 주의. 판트 해당 안 되는 경우 병에 '보증금 없음(Pfandfrei 또는 Ohne Pfand)'이라고 쓰여있다. 계산서에도 보증금 해당 여부가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맥도널드 해피밀에 딸려 나오는 음료수에는 보증금이 없다




판트 시스템을 통해 수거된 플라스틱병은 50번, 유리병은 25번 이상 재활용이 가능하다. 


2015년에 독일에서 판매된 플라스틱병(PET) 중 97.9%는 보증금 제도가 적용되었고, 판매된 병들 중 93.5%가 재수거됐다고 한다(German Society for Packging Market Research). 높은 재활용 비율이다.


판트 제도에 대한 비판도 있다. 


고작 몇 푼 돌려받으려고 마트까지 오가는데 드는 비용(자동차 연료 등)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슈퍼에서 모든 종류의 병의 수거를 지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고객들의 불편함을 조장한다는 점도 지적된다(유리병이나 음료 전용 컨테이너는 규모가 조금 큰 음료 전문매장(Getränkemarkt)에서만 취급한다).


'맥주 짝'에도 판트가 있다. 3유로 정도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일반 쓰레기 / 종이 / 플라스틱 / 비오뮬*의 분리 배출은 물론이고, 배터리나 전구는 마트에 비치된 별도의 수거함에 버려야 하며. 가전제품이나 가구와 같은 대형 쓰레기는 주민센터/시청에 신고 후에 버려야 한다. 

 *비오뮬(Biomüll) : 음식쓰레기를 포함해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배출물. 나뭇잎이나 흙도 포함된다. 


쓰레기도 날짜를 따져가며 버린다.


매년 말~연초에 종류별 쓰레기 수거 안내 책자(Abfallkalender)가 집집마다 배포되는데, 쓰레기 종류 별로 수거 날짜가 지정되어 있다. 수거 전날 밤 또는 당일 새벽에 집 앞 인도에 해당 쓰레기를 내다 놓으면 아침 일찍 큰 쓰레기차가 골목골목 수거해간다. 


쓰레기통은 곧바로 다시 본인의 집으로 들여놓아야 한다.(방치하면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고 이웃 주민들에게 원성을 살 수 있다) 


'쓰레기 달력'은 언제, 어디서, 어떤 종류의 쓰레기를 얼마에 수거해 가는지 자세하게 안내한다


쓰레기통은 규격이 정해져 있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쓰레기통의 크기는 120리터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보통 2주에 한번 있는 수거 날까지 사용하기에 그다지 넉넉한 용량은 아니다.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내용물을 담으면 안 된다. 버릴게 많다고 쓰레기통 옆에다 놓아두어서도 안된다(안 가져간다). 따로 시청/주민센터에 신고하고 수거를 요청하거나(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쓰레기 수거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파트(Wohnung)에 살기를 잘한 것일까? 


아파트 공용 쓰레기장에는 날짜 상관없이 하시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고 의기양양해하는 집주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우스 마이스터(Hausmeister; 아파트 관리인)가 상주하여 대신 쓰레기통 관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단독 주택의 로망을 포기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독일 사는 내내 쓰레기로 스트레스를 받을 뻔했다. 


마트에서는 철저하게 일회용 포장재 발생을 최소화하고 있다. 과대 포장이 없다. 


과일/야채는 대부분 비 포장 상태로 판매된다. 특별한 경우(물이나 흙이 너무 많이 묻어있는 경우)에 사용 가능한 얇디얇은 비닐봉지가 비치되어 있긴 한데,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귤 세 알, 사과 두 알, 호박 한 개 등 포장도 안된 과일/야채를 그냥 쇼핑 카트에 툭 던져 넣었다가 한꺼번에 다회용 장바구니에 넣어 간다. 처음에는 매우 생소한 나머지 '뭘 이런 거에까지 비닐을 아끼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익숙해졌다. 


장바구니 활용률이 엄청 높다. 


마트 계산대 바로 옆에 종이나 다회용 플라스틱 봉투가 비치되어있지만, 많은 경우 천으로 된 휴대용 장바구니를 사용한다. 핸드백에는 휴대용 장바구니를 한두 개씩 넣어가지고 다닌다. 봉투 없이 두 팔 가득 쇼핑 물품을 안고 가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독일은 쓰레기 재활용률이 EU 내에서도 가장 높은 모범국가다. Eunomia라는 영국 환경컨설팅 회사가 유럽 환경국(European Environmental Bureau)과 함께 진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2017년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재활용률(66%)을 보인 국가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당 배출하는 쓰레기양은 연간 626 킬로그램으로 높은 편이다. 


해가 갈수록 다른 나라들의 쓰레기 배출량이 감소하는데 비해 오히려 독일의 쓰레기양은 더 늘어났다. 재활용률과 일반쓰레기 배출량이 비례해서 늘고 있다. 분리수거율(Collected or sorted)은 높되, 실제 재활용(Recycle) 비율은 높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독일 환경 전문가들은 "훌륭한 판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모든 플라스틱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건 아니며 빨대와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입을 모아 말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쓰레기 그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How dare you?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


열여섯 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지난 9월 UN 연설에서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어른들'을 신랄하게 꾸짖었다.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평범한 아줌마로서 장바구니 한번 더 쓰고, 분리수거 한번 더 철저하게 함으로써 환경보호에 일조하기로 결심한다.




덧, 우리나라의 평균 쓰레기 배출량은 973g/일/인으로 OECD 평균 대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독일은 1,723g/일/인으로 평균 수치를 상회한다) 그러나 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2위로 연간 61.97kg이나 된다.게다가 1인 가구의 증가 및 포장/배달 음식 문화로 인해 그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여전히 갈길이 멀다. 





<참고 글>

Germany's waste problem: Recycling isn't enough / dw.com

툰베리는 어떻게 기후위기와 싸우는 '잔다르크'가 되었나 / Newstof

The Pfand system : how to return bottles in Germany / allaboutberlin.com

제5차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1인 하루 배출량 929.9g / 환경부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한국이 세계 2위인 거 아셨나요 / 한겨레



*메인사진  이미지 출처 : Alamy Stock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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