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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 cindyism Mar 05. 2020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살면 돼

인도 취준생의 일기




퇴사 후 숙소를 옮긴지도 세 번째,


언제까지 이 많은 짐들을 옮기면서 지내야 하는 건지 싶으면서도 한 번에 장기투숙을 예약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조금 불편하지만 감내하기로 했다.


여기 숙소에서 지낸 지 4일이 지났다. 

다섯째 밤, 아마 여섯째 밤이 지나면 또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인도에서 외국인은 어딜 가나 타깃이 된다.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가야겠다.


확실히 델리, 그리고 주변 인근 지역은 영어가 덜 통하는 것 같다. 

힌디어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까지는 가격을 알아듣는 것조차도 어렵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구르가온 주위로 구인공고가 올라오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다른 지역의 공고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면접을 본 곳이 딱 한 군데이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처한 상황이 급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또 체할 게 분명하다.

 

3월 말에 열릴 예정이었던 인도 내 취업박람회가 코로나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인도 정부에서 한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현재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앞으로 한 번 인도 밖을 나가면 다시 신규 비자를 받아서 입국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비즈니스 미포함 긴급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당분간 신규 비자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즉, 현시점에서 한국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가진 이 초록색 여권 하나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한 순간에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내가 중간에 제3 국으로 출국하지만 않으면 현재 6월 말까지 나는 인도에서 머무를 수 있다. 그전에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취업을 했을 때 나에게 신규 비자를 정부에서 발급해줄지 아닐지는 아직 의문이다.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우선은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은 계속해서 해볼 생각이다.


코로나 때문에 통역 아르바이트도 모두 취소되었고 이벤트도 더 이상 없다. 돈벌이가 없으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내가 가진 예산으로는 잘 아껴 쓰고 아껴 쓰면 앞으로 한 달 반에서 두 달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이 근처 숙박비가 유달리 비싸서 아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나는 요즘 기적을 바란다. 


내가 아무리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기적을 믿지는 않았었는데 

요즘은 내 가슴 한편에서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대구에 있는 내 친구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박혀 있다는 말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을 때 

나는 이 놈의 코로나가 빨리 사라지는 기적을 바란다. 


코로나와는 별개로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퇴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들이 꼬이는 사건이 몇몇 있었고 

그렇게 계속해서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든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세 번째로 옮긴 숙소에서 첫날 짐을 푸는데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이제는 아무도 없구나

내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도

설령, 내민다고 해서 내 손을 잡아줄 사람도 이제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온전히 나 스스로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자립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의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 날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더 이상 생각이란 것을 하지 말자고 다짐한 날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접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내가 고생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접었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라는 의구심을 품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고 온전히 잘 해결해나가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힘들 때는 그냥 힘들게 살면 된다. 


인도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리고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나와버린 것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기댈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 바라지 않기로 했다. 

지금 기대 버리면 진짜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훌쩍 성장해있겠지. 


그 날이 올 때까지만 그냥 더 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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