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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경 Jan 08. 2024

퇴사와 창업을 이끈 봉사활동

PDI에 모인 IWU

음식점 할 거가? 요즘 거의 백종원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식당오픈하면 오나요


가야지ㅋㅋ


ㅋㅋㅋㅋ별일 없죠?

부산은 바다라 더 추운가.. 서울 엄청 추워요


부산은 바람이 춥지

잘 지내지?

그 많은 음식은 누가 다 먹노


딸랑구랑 남편!



PDISTYLE(박동일 대표)

 23년 11월 27일 거의 묵음이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요리초보 탈출을 위해 미친 듯이 삼시세끼 다른 밥반찬을 하던 시기,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사진을 보고 DM이 왔다. PDI다. 박동일(PDI) 대표는 부산 남포동에서 바버샵(PDISTYLE)을 운영한다. 남자냄새 폴폴 나는 개성 강한 남성들이 주 고객이지만 여성고객도, 어린이도 이용 가능한 미용실이다. 동일오빠 인연은 내가 23, 당시 편집샵 운영이 궁금해 G편집샵에 주말 알바를 할 때 오다가다 인사했던 것이 첫 만남다. PDI는 지하 1층 미용실 오너이자 건물주였다. 지하 1층은 바버샵, 1,2층은 편집샵, 3층은 PDI 가족이 살았다. 모의 사모님과 똑 닮은 아들 둘,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다. 26세. B사 근무 3년 차에 지루함을 느낄 때쯤 PDI, JH 두 분이 IWU라는 봉사단체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IWU
I'll BE WITH YOU, IWU

 2014년 6월 단체명은 IWU. 함께 했던 행사명은 '렛츠미'였다. IWU와 렛츠미를 처음 고안한 것은 PDI, JH 두 분이었고, 기수 별로 운영스텝과 참가자를 모집했다. IWU 렛츠미는 작을 땐 300명, 많을 땐 천명가까이도 모였다. 나는 렛츠미 1기 운영스텝으로 참여했다. 5년째 회사원이던 나에게 눈이 반짝이는 신선한 활동이었다. 나이제한이 없었지만 2030 세대가 90%였던 것 같다. 전국 각지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으로 한 장소에 모였다. 부산의 홀로 노인 분들께 쌀과 생필품, 선물을 들고 직접 방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들은 우리가 찾아오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이 시간을 기다리셨다고 다. 현장에서 뵌 어르신들의 모습도 떠오르지만 지금 더 선명히 기억에 남은 것은 2030 피 끓은 청춘 눈빛이다. 10년 전만 해도 에너지를 양지에서 협동하며 분출시킬 수 있는 단체가 흔하지 않던 시기였다.

 좋은 취지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재능기부로 뜻을 모았으며 협찬사도 기수가 늘어갈수록 다양해졌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베이스캠프에 모인 사람들은 도시락을 먹고 다양한 음악과 문화공연을 만끽했다.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하며 꿈을 키웠다. 다 함께 만든 하루, 쾌감의 여운은 꽤 길게 남는다. 이 단체가 아니었다면 나는 각양각색 젊은이들의 열정 넘치는 눈빛을 어디서 볼 수 있었을까? 나에게 그 장면들이 영화필름처럼 귀하게 남아있다.

 2014년 연말 IWU와 KT올레가 함께한 팝업 행사에 엄마의 창작물을 판매하게 되면서 나는 퇴사와 창업을 실행했다. 혼 힘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었다. 창업할 브랜드 네이밍은 IWU운영사무국이라고 해야할까, 핵심멤버였던 경두오빠, 보람오빠, 킹콩오빠, 지환이, PDI, JH.. 두가 신의 일처럼  고민하고 도와줬다. 경두오빠는 사진을 남겨줬고 킹콩오빠는 팝업스토어에 사용할 명함과 엽서를 만들어줬다. 그 과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무역회사 2년, 외국계 영업관리 5년 합이 7년. 나는 어떻게 28세 한치의 망설임 없이 퇴사할 수 있었을까? KT올레 ×IWU 팝업업체 매출 1위라는 마의 창작물에 대한 확신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IWU 활동을 하며 곁눈질로 보고 배운  덕분이다. 의 내면에는 '성과를 만들고, 성과로 인해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사람들과 좋은 취지로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것에 흥미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 내 안에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강점 없었지만, 내 분야의 능력을 키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느꼈다.


 2018년 6월 아홉 번째 렛츠미 이후 IWU의 활동은 중단상태다. PDI에게 물어보니 현재는 기부활동만 유지 중이라고 한다. 서울 상경한 나 이외 부산에 사는 IWU 운영멤버 근황을 물어보니 여전히 다들 자주 본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 있었다. 각자가 가진 다양한 직업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IWU에서는 부캐로 활동한 것이다.


혹시 쓰다가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볼게요!


내가 한 건데 당연히 다 기억하지
언제든 물어봐

 나는 문득 그때가 생각다. IWU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였던 사람들, 행사를 운영하기 위해 뒤에서 노력했던 사람들, 본인의 능력을 아끼지 않고 서로에게 베풀며 더욱 성장하는 사람.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뜨끈한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생각을 해본다.


 항상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라고 이야기하는 PDI에게 감사하다. 수많은 주변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저렇게 마음을 베풀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서울 와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서울에도 따뜻한 사람은 많지만 부산 남포동 PDI주변에는 끈끈한 부산 사나이들의 의리?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다. 


내 인생의 기로에서 큰 울림을 준, PDI & IWU에서 만난 사람들은 귀 9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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