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이렇게 연락 줘서 고마워 되게 서운하고 그랬을 것 같아서 또 연락 잘 못한 것도 있었거든... 하 언니야.. 진짜 고맙고 미안하다
동생 H를 처음 만난 건 서울의 G모임이었고 G모임에서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H가 유일하다. H의 고향은 울산이나 부산에서 자취했다. 나는 당시 B사에서 갓 퇴사한 28세였다. 1인 창업이라는 꿈에 부푼 시기 우리는 만났다. H는 디자인도 가능한 브랜딩 마케터로 본인을 소개했다.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아이였고 5살 어린 친구니 당시엔 23살이었다. H의 자취방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고 집안에 책이 가득했다. 특히 마케팅과 브랜딩, 카피 관련 책이 정말 많았다. 요즘은 밀리의 서재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나는 H와 언니동생이자 꿈을 나눈 친구가 되었다. 1년가량 거의 매일 만났던 것 같다. H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단어들은 "브랜딩, 아이덴티티, 브랜드스토리"였다. 내가 창업했던 아이템은 2014년부터 SNS마케팅을 시작했었는데 박람회, 콜라보전시 문의요청이 오면서 그럴듯한 소개서를 만들어야 했다. H는 PPT 바보였던 나를 이끌어 회사소개서를 만들었다.
내가 도대체 언니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H는 답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가 "하..."한숨을 쉬었다가 결국 허탈하게 웃으며 나를 도와줬다. 나는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나보다 브랜딩에 대해 학문적 경험적 지식이 깊어 보이는 H에게 무한의지 하며 회사소개서, 브랜드로고, 팜플릿을 만들었다. 같이 공부하면서 슬슬 감이 왔고 제품 패키지도 제작했다. H는 내가 박람회, 콜라보 전시회를 열 때도 함께 했다. 일을 하다가 슬럼프가 오는 시기, 멘탈이 흔들릴 때면 "언니 내려와. 집 앞이야."라며 나를 차로 데리러 와서 송정바닷가로 갔다. 우리는 카페 메르시에서 수박에이드를 먹으며 밤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의 꿈을 응원했다. 어리지만 언니 같았던 동생 H
내가 29세에 먼저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뒤따라 H도 서울에 터를 잡았다. 서울 와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다사다난한 나름의 고충으로 H를 잘 챙겨주지 못했다. 훗날 들은 얘기로 H는 서울살이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나의 결혼식에 H는 부케를 받았다. 결혼식 이후 아이가 27개월인데 H는 아이를 한 번도 못 봤다. "언니, 한번 갈게. 다음 주에 시간 보고 갈게."라고 했지만 동생은 항상 일이 생겨서 못 왔다. 처음에는 많이 서운했는데, 오히려 요즘 귀인특집 글을 써가면서 서운한 마음이 켜켜이 쌓여있던 고마움으로 상쇄되었다.
H는 일 년 전 전화로 근황을 말했다. 울산에서 서울상경한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거나, 고향으로 내려갔단다. 팍팍한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아 친구, 언니들이 모두 지방으로 내려가고 본인만 남았는데 이제껏 꿈에 대한 확신은 있었는데, 서른이 넘으며 좀 두렵다고 했다. 곁에 누군가가 없다는 것, 외로움도 한몫한다고 했다. 당시 결혼 1년 차이자 6개월 아기를 키우는 나는 H에게 무슨 말을 해줬는지 기억이 흐리다. 그 말은 H에게 정서적, 현실적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을 것 같다.우리는 드문드문 안부톡만 나누다가 새해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통화로 서로의 근황을 전했다. 처음에는 서운했다가 고마웠던 일들과 미안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이제 다 괜찮고 H가 그냥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남는다.
나는 브랜딩하는 사람으로서의 H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지금도 꾸준히 책을 읽고 다양한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부지런히 성장 중이다. 23보다 32세인 그녀가 더 단단하고 멋있다. 내 주위 10년 뒤가 궁금한 인물 한 사람을 물어본다면 H다. 뻔하지 않고,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만나지 않고도 자극을 받는다. 우리가 다시 만날 날 서로의 꿈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도 오늘을 더 열심히 가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