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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다담지 못할 행복

너무 사랑하면 느끼는 감정

by 별경

엄마,

엄마는 우리 키우면서 언제 제일 행복했어?


너희들이랑 같이 있을 때 제일 좋았지. 요즘 육아 다들 힘들다 그래도, 그때 너희랑 같이 있는 시간 동안은 힘든 거 모르겠더라. 암만 힘들어도 자식보고 그날 또 웃고 사는 거지.


니도 니 새끼 좋제?




익선동 호호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골목길에서 침팬지 열쇠고리를 사고, 청수당에서 티타임을, 성균관대에서 100층짜리 집 뮤지컬을 보고 왔다. 낮잠시간을 건너뛴 탓에 뮤지컬의 엔딩은 보지 못한 채로 나왔다. 아, 안채 마룻바닥 같은 청수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별이를 바닥에 눕혀 다리마사지를 해줬더니 기저귀를 비켜 뚫고 시원하게 오줌이 새어 나왔다. 일어나 보니 영희 바지에도 오줌자국이 남았는데, 마사지에 너무 집중했을까. 어제 따라 유난히도 사랑스러운 딸내미에 취했을까, 오줌이 바지에 젖는 줄도 모르고.. 아직 차가운 1월 겨울 공기에 젖은 바지가 맞닿아 혜화역 거리를 걸어도 좋았다.


차를 타자마자 졸리다며 품에 파고들어 잠드는데, 벌써 키가 만치 많이도 길어졌다. 오후 5시. 저녁도 안 먹고 이대로 잠들면 9시쯤 깨겠고만 싶다. 4년 키운 짬밥일까. 정확히 9시에 눈 비비며 이불 덮어쓴 도깨비처럼 일어나 배가 고프단다.


아빠 어디 있어?


아빠는 텐트방에.

아빠 피곤해서 자고 있으니 깨우지 말고 밥 먹자.


응응! 배고파 배고파


낮에 여유 있게 만들어둔 볶음밥을 데워 먹이고, 단감하나를 깎아주고, 아몬드 몇 알. 우유는 이제 전용 셀프바에서 수시로 가져다 먹는 꼬맹이.


엄마 배 커졌나 만져보세요


배가 제법 빵빵해지니 기분이 좋은지 본격 재롱타임 시작이다. 자고 있던 철수가 딸내미가 보고 싶은지 슬금슬금 나와서 아기새처럼 밥 먹는 별이를 사랑스레 보다가, 선물로 들어온 홍삼을 먹어봤냐며 "이게 참 기운이 나긴 하더라." 홍삼 한팩 한마디를 남기고 슬며시 으로 들어간다.(*암묵적 룰처럼, 부부 중 단독 휴식이 필요한 사람 또는 다음날 야간근무를 앞둔 일요일, 수요일 밤의 철수는 텐트방으로 간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저리 못 봤니?

이 노래가 이런 가사였던가. 손의 제스처를 보고 있자니 낮에 뮤지컬을 봤던 영향인지 손이 무대 위의 배우다. 가사도 생각지도 못하게 개사를 하는데 영희는 엄마라서 이리도 웃긴 걸까. 영희가 배꼽 잡고 웃기다를 외치니 별이가 말한다.


엄마, 기분이 안 좋을 땐 나한테 말해.

내가 이 노래 불러줄게


언제 이리 컸을까. 평소와 다름없는 오늘인데 무엇을 사고 어디를 간 것보다 넘치는 사랑을 느끼면서 저 먼발치 따라오는 불안함도 바라본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내 새끼. 하루하루 커가는 게 너무 소중한데,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이라 생각하니 청승맞게 눈물이 흐른다.


새벽에 화장실을 간다고 깼더니 영희 옆에 별이가 없다. 별이는 텐트방에 가서 아빠의 팔베개를 하며 잠들어 있다.


엄마 마사지해 줘. 손마사지, 발마사지, 얼굴마사지, 머리마사지, 귀 마사지, 허리마사지.. 전신마사지 코스를 다 받고 마주 보며 씩 웃더니 고사리 손으로 나를 따라 얼추 비슷하게 마사지를 해준다. "오 시원하다. 정말 좋은데?!" 추임새를 넣어주니 아직 여린 손끝에, 조그만 입가에 힘이 들어간다.


엄마 손이 너무 큰데 내 손은 작아서 어려워


그래도 시원해. 충분히 너무 좋다.

엄마도 마사지 매일해줘. 고마워!


엄마 엄마, 우리 이제 책 읽자!

책 두권만 가져오는 거다~ 두권만 읽고 자자!


별이는 자정을 넘겨 읽고 싶은 책까지 골라 읽고 잠든 줄 알았건만 아이를 재우던 영희만 잠들고, 철수의 팔베개까지 만끽하러 떠났다.


엄마 행복하다! 엄마 오늘 너무 행복한 날이야!

샤워할 때부터 잠들 때까지 별이의 충만한 하루.


청수당에서, 밤을 향한 손짓(25.01.19)

사진을 더 남길까, 영상을 더 남길까. 넘쳐나는 사랑의 순간들을 어떻게 보관하는 게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흘러가는 시간 속, 주머니에 다담지 못할 행복을. 두 눈에 담으며 이번 생에는 내 마음속 촉각을 온전히 느끼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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