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은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맡은 동료일 뿐이다
저에 대한 피드백 좀 주실래요?
팀장님과 평가 면담 중이었다. 신선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대개 고과 면담은 형식적인 절차로 끝나기 일쑤였으니까. 의미 있는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하는 팀장님도 만나봤지만 본인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는 분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큰 팀을 맡아보게 됐고, 조직을 운영하며 느끼는 어려움이 많아 조언이 필요하다 하셨다. 팀 리더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운영이나 소통 방식에 대해 느꼈던 아쉬운 점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었지만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피드백을 나누는 과정에서 팀이 성장하고 변화한다고 느꼈다. 피드백으로 팀을 이끄는 법을 보고 많이 배웠다. 먼 훗날 팀장이 되거든 나도 저렇게 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3개월 뒤, 팀 리드를 맡게 되었다. 중압감이 엄청났다. 내 성과만 내면 됐는데, 이제 팀의 성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팀원들은 내게 "우리의 방향을 잘 잡아주실 거라고 믿어요!"라고 말하거나 "어떻게 하면 우리 팀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하고 물어왔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말하면 절대 안될 것 같았다. 새로 생긴 팀의 미션과 비전을 세우고 로드맵을 만드는 일은 당연하게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 사이에 새로운 발견과 성취를 기대하며 배에 올라탄 선원들이 타자 마자 도망쳐버릴까 봐 두려웠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행여 길을 잃어도 이를 악물고 방향키를 잡아야지. 다짐하며 매일매일 버텼다.
어느 날 같은 팀 동료가 티 타임을 요청했다.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 피드백을 해달라고 했다. 아뿔싸 싶었다. 팀 리더가 되고 한 번도 1 : 1 면담을 하거나 대면으로 동료 피드백을 준 적이 없었다. 나의 지난 팀장들에게 늘 아쉬웠던 게 피드백의 부재였는데. 팀 리더 역할을 하는 게 자칫 완장질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 조심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팀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자의식 과잉이었다. 1 : 1 면담과 피드백은 팀장 역할을 맡은 자의 책무였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팀원들이 쓴 관리자 평가서를 수도 없이 읽었는데 “관리자가 어떤 점을 개선하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피드백을 더 많이 주면 좋겠다”이다.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피드백을 주는 요령을 따지기 전에 일단 해야 할 것은 자신이 피드백을 충분히 주지 않고 있을 가능성을 인지하고 피드백을 더 많이 주는 것이다.
- 줄리 주오, <팀장의 탄생> 중에서
좋은 팀장이란 무엇일까. 위계가 중요한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에서 팀장은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 팀원들이 따르고 복종해야 하는 상사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의 저자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는 CEO마저도 회사를 이끄는 역할을 맡은 동료일 뿐이라고 쓴 바 있다. 페이스북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 줄리 주오 또한 팀장은 팀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게 돕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줄리 주오가 쓴 <팀장의 탄생>을 읽으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리더라고 해서 슈퍼맨이 될 필요는 없다. 리더가 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인지하고 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리고 팀장도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나의 팀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팀원들과 1 : 1 면담을 하면서 먼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혼자 끙끙 앓던 고민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분기 목표를 수립하는 과정부터 회의와 스프린트를 운영하는 방식, 업무를 배분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까지 고민이 정말 많았다. 그동안 리더니까 스스로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 누구도 나를 무능력하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따뜻한 격려와 함께 도움이 되는 조언과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 또한 팀원들이 내게 도움을 청할 때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피드백 또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과정이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규칙없음>에서 좋은 피드백을 주는 4가지 원칙 중 첫 번째로 도움이 될 것(Aim to Assist)을 꼽는다. 서로에게 언제든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요?"라고 묻거나 "이렇게 해주시면 제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의 팀이라면 일하는 것이 더없이 즐거울 것이다.
이제는 혼자서 팀을 끌어가려고 끙끙대지 않는다. 누군가 "우리 팀의 방향은 잘 잡아주시겠죠?" 하고 말하면 "팀의 목표는 저 혼자 세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함께 팀의 성과를 잘 만들어 보아요!"라고 답한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돌아가는 조직도 있겠지만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역할 조직이라면 신뢰와 위임은 성과를 내는데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저마다의 강점과 역량을 가진 우리 팀원들이 나 혼자 해낼 수 있는 것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탁월한 성취를 이뤄낼 것이라고 믿는다.
복잡하게 얽혀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가닥이 잘 잡히지 않는 문제를 팀원이 어쨌든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맡기는 것만큼 강한 신뢰의 표현도 없다. 물론 이때는 팀원이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된다고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한 발짝 물러나서 팀원이 알아서 하게 놔두자. 이제부터 그 팀원이 그 문제의 책임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지하자.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해야 위임을 받은 팀원에게 책임감이 생기고 힘이 실린다.
- 줄리 주오, <팀장의 탄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