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5 - 2018.02.25
매년 2월에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는, 개인적으로 2015년에 한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더 정감이 가는 영화제입니다. 당시에 빔 벤더스의 신작 ‘에브리띵 윌 비 파인(Everything Will Be Fine)’ 취소표를 겨우 구해서 프리미어 스크리닝으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그 이후로 3년이 넘게 흘렀네요. 올해도 경쟁 부문의 상영작 면면을 살펴보니, 베를린 영화제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감독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느껴지네요.
올해로 68회째를 맞이한 베를린 영화제는 심사위원장으로 독일 감독인 톰 티크베어를 위촉했고, 그 결과로 루마니아 여성 감독의 데뷔작인 ‘Touch Me Not’이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동시에 최고의 데뷔작에 주는 상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장편 데뷔작으로 은사자상과 최고의 데뷔작에게 수여하는 상을 함께 수상한 자비에 르그랑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작년 수상작이었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수상 이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걸 떠올려보면(그때 감독님과의 GV도 매우 좋았습니다), 올해 중에 국내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최근 3년 정도의 황금곰상 이력을 살펴보면, 폴 버호벤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2017년에는 헝가리 감독인 일디코 엔예디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On Body and Soul/Testről és lélekről)’가, 메릴 스트립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2016년에는 이탈리아 감독 지안프랑코 로시의 ‘화염의 바다(Fire at Sea/Fuocoammare)’가,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2015년에는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Taxi/تاکسی)’가 황금곰상을 수상했었죠. ‘화염의 바다’는 아직 보지 못했고,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좋았지만 일디코 엔예디 작품들 중에서라면 1989년작 ‘나의 20세기’가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습니다. ‘택시’는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했었는데) 2015년 국내 개봉작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다른 얘기로 좀 샌 것 같지만, 어쨌든 올해 수상작도 어서 보고 싶네요.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는 크게 세 작품이 가장 궁금합니다. 먼저 미국 감독 웨스 앤더슨의 신작 ‘Isle of Dogs’를 빼놓을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는 웨스 앤더슨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판타스틱 Mr. 폭스’)보다는 실사 영화(‘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 등)를 더 좋아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의 전작이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었음을 고려하면 근 4년만에 나오는 이 신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국내에도 정식으로 개봉할 것 같은데, 부디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으로는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Transit’입니다. 크리스티안 펫졸트는 (아직 초기작들을 다 보지 못했지만) 최근에 내놓은 ‘피닉스’ 그리고 ‘바바라’ 두 편이 모두 걸작에 가까운 완성도를 자랑하기에, 이 신작 역시 정말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필리핀 감독 라브 디아즈의 ‘Season of the Devil’. 전작으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데 이어서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도 그의 신작이 출품되었는데, 라브 디아즈의 작품은 (명성에 비해) 도무지 국내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정말 궁금합니다. 이번 신작은 어디선가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덧붙여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한 윌렘 데포, 정말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