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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Dec 27. 2018

2018년 12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12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4편.

로마 (알폰소 쿠아론)

부탁 하나만 들어줘 (폴 페이그)

갈매기 (마이클 메이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맨)





R104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최고작, 그리고 올해 최고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과 ‘그래비티’라는 두 걸작으로 본인이 만든 한계를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는 '로마’로 그걸 기어이 해낸다. 알폰소 쿠아론이 ‘이 투 마마’ 이후 16년 만에 멕시코로 돌아와 만든 신작 ‘로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강렬한 영화적 경험으로 사로잡는다. 그가 직접 밝혔듯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게 바치는 자전적인 영화인 ‘로마’는 지극히 사적이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적이고, 지극히 특수한 누군가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보편적인 모두의 이야기다.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1년을 함께 따라가는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의 근작들이 모두 그랬듯 생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허나 그의 이전 두 편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탄생이라는 동적 메타포가 다르게 전개되는 까닭에, ‘로마’는 어쩌면 알폰소 쿠아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슬픈 작품이다. (‘칠드런 오브 맨’의 후반부와 ‘로마’의 후반부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시네마스코프 비율 속 완벽하게 짜여진 모든 프레임의 안과 밖은 서로 시청각적으로 조응하고, 마치 서로 공명하는 듯한 쇼트와 쇼트 그리고 시퀀스와 시퀀스는 러닝타임 내내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극중 클레오가 세 차례 방문하는 극장이라는 장소를 이 영화가 점진적으로 묘사하는 양상은 메타시네마로서 ‘로마’가 지니는 가치를 훌륭하게 환기하고 있기도 하다. (넷플릭스로 공개되었지만, 이 영화는 정말이지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다.) 카메라의 지향점(나아가 인물의 현실)을 거울의 상처럼 대치시킨 ‘로마’의 오프닝과 엔딩을 떠올리면,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로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로마'라는 황홀한 영화적 마법, 나는 이 영화의 모든 순간들을 마음 속에 영원히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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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Roma, 2018)

dir. 알폰소 쿠아론

★★★★★



R105 <부탁 하나만 들어줘>

폴 페이그의 재치가 여전한 그의 신작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그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스테파니(안나 케드릭)와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 두 캐릭터를 전체적인 플롯 속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이 영화는 캐릭터를 위해 스토리를 희생시키는 것처럼 무리한 전개를 남발한다.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던지며 이야기를 끌어가던 전반부는, 허겁지겁 영화를 마무리하려는 후반부와 비교하면 그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데리고 평범한 결말을 지으려는 영화를 마주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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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하나만 들어줘 (A Simple Favor, 2018)

dir. 폴 페이그

★★★



R106 <갈매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라 할 수 있을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각색해서 만들어진 마이클 메이어의 신작 '갈매기'는, 분명 연극의 틀을 살린 영화라는 점에서 고전적 매력을 풍긴다. 극 내내 기저에 깔려있는 허무주의적인 감상이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특정 장면들에 특히나 잘 녹아들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연을 목적으로 하는 희곡의 각본이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로 변주되는 과정에서, 영화로서의 '갈매기'가 지니는 특징은 영 희미하다. 시대가 지나도 회자되는 고전으로서의 원작이 지니는 강력한 힘과 전반적인 연출로 보아 모날 데 없는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기에, 영화만의 색이 희미히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연기의 측면에서 보아도 서르셔 로넌과 아네트 베닝, 코리 스톨의 연기가 좋지만, 빌리 하울과 엘리자베스 모스는 그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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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The Seagull, 2018)

dir. 마이클 메이어

★★★



R107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영리하고 기민하다. 히어로 블록버스터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혹은 매너리즘을 돌파하려는 야심찬 시도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는 가득 담겨있다. 이제는 다소 지겨울 수밖에 없을 클리셰들을 내레이션으로 손쉽게 돌파해버린 뒤, 신선한 이야기로 관객들의 감흥을 한껏 고취시킨다. 코믹북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획 의도 자체를 영화의 창작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작품은, 만화이기에 가능했을 연출을 영화로 끌어오는 데 있어 재기발랄하면서도 능숙하다. 작화 상의 차이점을 다중우주라는 세계의 차이로 묘사하고 있는 시각적인 명료함이 인상적이고,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영웅으로 활약하고 있는 히어로들을 한 데 모으면서도 중심을 교묘하게 잡고 있어 이야기에 탄력을 잃지 않는다. 영화에서 놀림의 대상으로 삼던 뻔한 전개가 이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서 살짝 갸우뚱하다가도 그것마저 이 뻔뻔한 영화의 장점으로 넘길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능력이라면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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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dir.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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