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쓸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누구든 잘 알아보도록 정확히 적겠습니다.
인간에게 통각은 굉장히 중요한 감각입니다. 우리는 통증을 통해서 어떤 것이 위험하고 어떤 것이 안전한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카로운 것에 베이든, 불에 데이든, 무거운 것에 찧이든, 사람에게 두드려 맞든, 우리는 그때마다 통증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생존위협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날아오는 공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리거나 손으로 막는 등의 행위들. 이것들은 모두 통증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아준 무의식적 생존 행동인 것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각각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이 크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이 작습니다. 크고 작은 차이지만, 인간에게 외로움이란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로움이 통증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을 웰빙이라 칭찬하고,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을 약자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깨달은 현실은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증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피하는 방법들을 차곡차곡 경험으로 쌓아갑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마련해놓기도 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상시적으로 연인을 만들거나, 결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외로움이라는 통증이 만든 생존 행동입니다.
반대로 외로움이 크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존행동의 필요성을 모르고 삽니다. 혼자서 잘 놀고, 혼자서 밥잘 먹고, 혼자서 뭐든지 잘하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생존에 위협이 될만한 것도 없습니다. 즉, 이들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통증'이 아닌 것입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한 번도 외로움이 통증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외로움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아픕니다. 하지만 나는 평생동안 이것으로 아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이 통증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나을뻔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죽도록 아픈데도 해결할 방법을 모릅니다. 그것이 내가 이 유서를 적는 이유입니다.
대비하지 못한 채 만난 외로움은, 목숨을 위협하는 통증이었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에, 나는 생존 행동을 모릅니다. 그래서 생존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부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더라도, 그것이 중요한 통증임을 잊지 않기를.
2021년 12월 25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XXX.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