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천천히 나뭇잎 색도 변해가는 완연한 가을 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잖아요. 그래서 프랑스 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작품을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워낙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을 것 같아요. 바로 열 네살 소년의 슬프면서도 찬란한 삶의 이야기,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입니다.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Par Émile Ajar (Romain Gary)
소설은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랍 소년 모모가 아주머니 로자와 함께 살며 각자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이야기인데요, 60년대 파리 벨빌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사회 주변부 인물들을 소년의 시선으로 담아내요. 너무 일찍 인생을 알아버린 것 같은 소년의 담담한 문장들이 참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죠.
이 작품을 쓴 에밀 아자르는 사실 당대 작가로써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로맹 가리입니다. 일찍이 <하늘의 뿌리 Les Racines du ciel>라는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Les oiseaux vont mourrir au Perou>로 미국에서도 최우수 단편상 또한 수상하며 큰 사랑을 받았죠. 그는 외부의 기대와 선입견으로 부터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다른 필명들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에밀 아자르도 이중 하나였고요.
그러니까, <자기 앞의 생>은 문학도로서 찬란한 삶을 산 예순 넘은 로맹 가리가,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삶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에요. 본래 정체 불명의 작가의 작품으로 출간된 <자기 앞의 생>은 비평적인 찬사를 받고, 공쿠르 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공쿠르 상은 한 작가에게 두 번 수여될 수 없는 상인데요, 로맹 가리는 자신의 성공적인 '부캐'인 에밀 아자르를 통해 두 번이나 공쿠르 상을 수상한 전례 없는 작가가 되었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유서를 통해 공개되었고요. 이 사실이 프랑스 문학계에 얼마나 충격이었을지 가늠도 되지 않네요…
이 작품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1977년에는 시몬 시뇨레 주연의 프랑스 영화가 개봉했고, 2020년에는 소피아 로렌이 주연을 맡은 이탈리아-미국 합작의 넷플리스 영화가 공개되었어요. 작품이 발표된 후 반 백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지.. 정말 한 문학 작품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지금 소개드리는 그림들은 일러스트레이터 마누엘 피오르가 그린 <자기 앞의 생>의 장면들입니다. 한국에도 일러스트가 포함 된 양장본이 제작되었으니, 책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뿐만 아니라, 이미 읽어보신 분들도 다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차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낮은 채도의 삽화들이 작품과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물론 당시의 파리 풍경을 상상하며 작품을 즐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프랑스어 공부하고 계신 분들은 원서로 읽으시면 더 좋겠죠? 국내에서도 온라인으로 원서 구매 가능한 작품입니다. A2 이상의 실력을 갖추셨다면, 하루에 꼬박 꼬박 몇장씩 읽어보시는 것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조용한 시간에 정성스럽게 쓰여진 소설의 불어 문장들을 하나 하나 음미하며 공부할 수 있는 것이 프랑스어 학습자의 특권이니까요!
저도 정규반 수업들이 조금 더 체계가 갖춰지면, 문학 작품과 영화들을 함께 읽고 보며 이야기 나누는 아뜰리에 수업도 운영하고 싶네요.
-
* 아래의 본에뚜알 프랑스어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시면 수업 관련 공지사항과 프랑스어 관련, 프랑스 문화 관련 알찬 포스트들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bonne.etoil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