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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Nov 17. 2017

지금 당장 죽을수도 있다는 공포

이틀째 잠을 설치고 있다.


살면서 내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가령, 총을 든  괴한에게 살해를 당한다거나, 전쟁을 겪는다거나, 자연재해나 사고로 가족을 잃는다거나 등등 주로 죽는 것과 관련된 일들이다. 하지만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고 지금도 어딘가 에서는 진행형인 일들이다. 뉴스를 통해 우리는 매일 죽음을 접한다. 테러리스트의 무차별 공격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폭격 속에서 폐타이어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을 보는 순간에는 ‘저런, 어떡하니...’하지만 그것은 영화만큼 현실감이 없게 느껴진다.


작년 추석 연휴 때, 나는 부산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소파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하고 안마 의자에서 안마를 받고 있는 아빠를 보는데, 아빠는 안마의자의 진동에 흔들거림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곧이어 2차 진동이 오고,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던 엄마가 세면대가 흔들린다 했다. 채널을 뉴스채널로 돌리고 핸드폰으로 지진을 검색해봐도 별다른 뉴스가 없었다. 다시 진동이 왔다. 이번에는 드르르르 물건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 조명이 바람에 흔들리는 추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때 뉴스에서 바로 지진에 대한 속보를 내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겪어보는 지진에 마음이 쉽게 진정 되지 않았다. 그때 내 느낌으로는 금방이라도 아파트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일단 밖으로 피신을 가자, 하고 강아지를 끌어안고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밖으로 나오니 다른 사람들도 겁이 났는지 아파트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진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봤으면 저 사람들이 살고 싶어서 나온 사람들인지 죽고 싶어서 나온 사람들인지 했을 것이다. 급추락 할 수도 있고 갇힐 수도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진동에 건물 외벽이나 유리창 조각이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아파트 옆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무언가가 부서지거나 무너진 것도 아니고 더 이상의 진동도 없고 해서 우리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서 뉴스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경주에서 5.8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다고 했다. 나중에 각종 지진 영상이 여기저기 올라왔는데 경주에서는 상점의 유리창이 깨지고 외벽이 무너지고 집안의 물건들이 쏟아지고, 여진이 계속되어 겁먹은 시민들은 집에 들어가질 못하고 있다했다. 지진이 일어난 날 밤부터 나는 일주일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대가 흔들리는 것 같았고, 강한 바람에 창문이 살짝 흔들리기만 해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지진 대피 매뉴얼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지만 막상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과연 우리 아파트는 지진을 견뎌낼 수 있는 건물인가? 우리 집은 14층인데, 대피하다가 깔려 죽는 건 아닌가?  


그때 처음으로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무너진 벽 틈에 갇혀서 구조를 기다리는 나를 상상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 보다 즉사 하는 게 낫겠구나, 생각했다. 괴로웠다.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도에 내려가면서 지하철 진동이 바닥을 통해 전해지면 아, 다음엔 그냥 일찍 나와서 버스 타야지. 했다. 엄마는 유난을 떤다고 했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고 예견할 수 없는 자연 재해라는 사실에 더 무서웠다.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라 믿고 살아왔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그렇게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있음에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었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고, 자라면서 지진 대피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으니, 그 어리석었던 믿음이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웬만큼 강한 지진이 아니고서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대지진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원전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경남일대가 초토화될지도 모른다는데, 경주에서 난 5.8 규모 지진을 부산에서 느낀 것만으로도 일주일간 잠을 설쳤는데, 하면서 대피 키트를 만들고, 지진이 나면 가스밸브를 잠그고, 현관문을 열고, 진동이 멈출 때까지 욕실에 대피했다가 대피는 무조건 학교 운동장으로 가자, 나름의 대피 매뉴얼을 짰다. 순간순간 지진의 공포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는 옅어졌다.


그런데 지난 15일, 오후 작업을 시작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핸드폰이 사납게 울리기 시작했다. 긴급재난문자. 경북 포항에 5.5규모 지진발생. 안전에 주의. 5.5? 그럼 경주지진만큼 강하다는 건데? 하면서 알림을 끄는데 손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닥에 진동이 감지되고 책상이 몇 초간 흔들렸다. 어떡하지? 설마, 원전 터지지는 않았겠지? 탈원전 서명 운동 하거들랑 꼭 서명 해야지. 인터넷 창의 새로 고침을 계속 누르면서, 부산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원에서 산책중이라는 엄마는 지진이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고 하니 엄마는 또 내가 유난을 떤다고 했다. 


포항 피해상황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해규모와 정도가 경주 때보다 심해보였다. 여진의 위험 때문에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기까지 했다. 여진이 계속해서 감지되고 있고 진도 5.4의 본진보다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다는 뉴스에 나는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 미리 알 수도 없고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기에 운에 맞길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은 꽤나 스트레스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격이 일어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어떻게 견뎌내면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겨우 진동 조금 느꼈으면서 너무 오버 하는 거 아냐? 할 수도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없었던 지진이 (약한 지진 제외하고) 일 년 사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고 이것이 끝이 아닐 거라는 불안이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또 한동안은 순간순간 발바닥이 찌릿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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