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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Oct 19. 2017

예고 없이 가을이 왔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싸더니 이내 살갗에 닭살이 올라온다.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오늘은 옷 정리를 좀 해야겠구나,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를 몇 분 동안 외치다 뭔가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가을이 왔다. 


10월하고도 중순이니 가을이 왔다라고 하면 누가 그걸 모르냐 할 수 있겠으나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일교차를 감안 하고서라도- 겉옷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가지고 다니는 것이 짐처럼 느껴졌는데, 도대체 이놈의 더위는 언제 사그라드는 거야! 했는데 계절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변화인걸 알면서도 내 팔뚝을 뒤엎은 닭살이 낯설다. 마치 가을이라는 계절을 관념으로만 인지하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여름이 지긋지긋하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했던 것은 아니다. 여름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특히 올해 여름이 그랬다. 한낮의 열기에 데워진 아스팔트는 밤이 되어 다시 열기를 뿜어내었고 내 작은 방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선풍기를 틀어도 내 몸은 끈적거렸고 아침이면 마구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온 몸이 뻐근했다. 그리고 뉴스에서도 올해 여름이 덥다고, 열대야가 계속된다고 떠들어대니 나의 체감 더위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 보다는 내일 높아질 예정이었다. 

한낮의 더위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으니 제발, 제발 밤에 잠은 잘 수 있을 만큼의 기온은 되기를, 몸에 얇은 이불이라도 하나 둘렀을 때 오는 포근함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했고 –어디 그런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을까- 내 기도는 9월이 다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9월이 되어서도 낮에는 30도를 육박 할 만큼 뜨겁고 길었지만, 다행히 샤워를 할 때는 온수가 필요했고 밤에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날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추가 지나서도 여름은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작년에도 이랬었나? 가을이 오기는 오는걸까? 이러다가 정말 사계절이 아니라 여름과 겨울만 남는 거 아냐? 했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뜨니 가을이다.


맨얼굴로 화장도 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있는데 갑자기 남자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럽다. 나는 아직 가을 너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어떡하냐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싸늘한 공기를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다. 

아이스팩을 수건에 말아 끌어안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도대체 더운 바람이 나오는 이 선풍기를 나는 왜 켜놓고 있는 건가, 한겨울에 틀어도 과연 차가운 바람이 나오기는 하는걸까?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을 배 위에 놓고 느긋하게 영화라도 한 편 보려면 뜨겁게 달궈진 노트북에 찜질 마사지를 받는 것 같고 내 체온까지 더해져 노트북이 혹여 폭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뜨거워서 카페로 피신가던 시간이 지나고 노트북의 금속이 내 살을 건드리면 얼음을 몸에 댄 것처럼 싸늘함이 퍼지는 시간이 온 것이다. 그래. 나는 이 차가움을 기억한다. 


여름 하늘, 산, 들.

여름옷들을 정리해서 넣고 가을, 겨울옷들을 꺼내면서 올해도 다 갔구나, 덥다덥다 하던 시간이 가니 춥다춥다 하는 시간이 와버렸구나, 인생 참 별거 없네, 바닥에 널부러진 옷들을 정리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낮이 짧아지고 옷이 두터워지면 왠지 모르게 설레고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참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으면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수많은 실망을 경험하면서 왠지 모르게 설레는 기분 좋음은 없어졌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여러 곳이 있었고 주말마다 비디오 테잎을 빌려 보곤 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이 나오면서부터 앞으로 두 시간동안 보게 될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내 가슴은 두근거렸고 조그마한 소음에도 예민해져 식탐 많은 내가 영화를 볼 때만큼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었다. 그때 내게 영화는 정말 멋진 것이었다.(지금도 영화는 여전히 멋지다!) 주말마다 만나게 되는 새로운 이야기에 늘 감탄했었다. 정말이지 그때의 그 즐거움이란!! 장르를 불문하고 허기진 사람처럼 영화를 보던 시절이 지나고 지금은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도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잃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호기심과 설렘으로 두근거리며 영화를 보지는 않는 것 같다. 대충 짐작하고 짐작된다. 영화를 보고 내가 느끼게 될 감상과 감정을. 실망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의 강도는 대부분 중간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한다. 물론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무엇을 보여주는’ 영화들도 있고,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수십 번을 보아도 재밌고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영화들도 있지만 역시 그래서 짜릿하다거나 설레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분명, 설렘과 기대, 설렘과 즐거움은 다르니까. 설렘은 이유 없이 왔다가 이유 없이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침에 춥다고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는 변명이, 시간 가는 게 속상하다는 푸념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가을이 왔다는 게 갑작스럽고 가만 보자, 나는 겨울이 오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무이유 없이 설레어서 그래서 좋아했잖아, 그런데 그 설레는 감정은 어디로 간거지? 그나저나 올해도 다 갔네...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것이다. 


겨울이 좋은 만큼 봄과 여름을 싫어했었다. 그땐 그랬다. A가 좋으면 좋은 만큼 B가 싫었고 매사에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A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진심이 아닌 것처럼. 


지금은 봄은 봄이라서 여름은 여름이라서 좋다. 가을이 가을이고 겨울이 겨울이어서 좋다.


두 달 반 밖에 남지 않은 올해가 아쉽고 속상할 따름이다. 아직 두 달 반이나 남았다고 억지로 위로하면서 올 겨울은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스웨터를 개켜 옷장에 넣는다. 


낮에는 아직 포근한 햇살이 있으니 책 한 권 들고 긴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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