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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Dec 01. 2017

[영화 리뷰]For no good reason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 2012


모르던 작가를 알게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기도 하고, 아니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배회하다가 제목이나 표지에 이끌려 책장을 펼치기도 한다. 내가 헌터 s. 톰슨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서점에서 우연히 집은 그의 책 표지에 붙어 있는 조니 뎁의 사진 때문이었다. ‘럼 다이어리’. 조니뎁이 주연한 영화의 원작 소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과 조니뎁 사진에 호기심이 동해서 책장을 펼치자 바이크에 올라타서 총을 겨누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나왔다. 곤조 저널리즘, 권총 자살, 마약, 알콜 중독, 비트 세대. 그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보고 아, 이 작가 골 때리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헌터 S.톰슨과 조니 뎁

 그의 ‘럼 다이어리’를 먼저 읽고,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를 이어서 읽었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는 전에 본적 없는 기괴한 소설이었고, 책에 삽입된 삽화들이 그 기괴함을 더해 주었다. 술과 마약에 취한 두 인물을 따라가느라 나는 정신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불편하면서도 강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삽화를 그린 사람이 영국 출신의 삽화가 랄프 스테드먼이라는 것을 책장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랄프 스테드먼의 삽화

조니 뎁 덕분에 헌터 S. 톰슨을 알았고, 톰슨을 통해 랄프 스테드먼이라는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영화 한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은  스테드먼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면서 헌터 S.톰슨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라스베가스의 혐오와 공포'에 출연한 조니 뎁. 원작자 헌터 s.톰슨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 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는 토끼를 따라 굴을 통과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듯이 영화는 누군가의 작업실로 보이는 공간을 훑어가며 탐험하듯 작가의 작품세계로 들어간다. (스테드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필름이 영사기에 걸리자 거친 영상 속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 있는 스테드먼이 보이고, 인터뷰어로 참여한 조니 뎁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과거의 기록, 참고 자료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랄프 스테드먼과 조니 뎁

영국 출신의 삽화가 스테드먼은 미국에 와서 기자, 톰슨을 만나 그의 기사에 실을 삽화를 그리게 되고, 그것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동료이자 라이벌로 애증의 관계를 이어간다. 두 괴짜는 서로 달랐지만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들의 작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된다. 한 사람은 미국에서 한 사람은 영국에서, 때로는 함께 작업하며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톰슨의 소설 [라스베이거스의 혐오와 공포]이다. 두 사람이 보는 뒤틀린 세상을 톰슨은 글로, 스테드먼은 그림으로 완성하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예술가와 예술관과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행운일 것이다. 톰슨을 빼 놓고 스테드먼을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를 하지만 두 사람은 곧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영화만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영화를 통해 내가 느낀 톰슨은 괴짜에 상대하기 어렵고 과격한, 그럼에도 순수한 철부지, 스테드먼은 진중하고 조용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과격하고 뜨거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스테드먼의 작업방식을 목격한다. 붓에 잉크를 묻혀 도화지 위에 튕기고,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다시 붓으로 색을 입히고, 그 위에 젯소를 입히고 나서 입으로 스프레이를 불어내고, 젯소를 벗겨내고, 다시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즉흥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우연의 작품처럼 영화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정확하게 짜여 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 된다 기 보다 조니 뎁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과 작업에 임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헌터 S.톰슨에 대한 이야기들과 적절히 섞여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파트너, 친구, 라이벌.


영화 도입부에서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는 그의 고백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날

카로운 통찰력과 유머를 가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끊임없이 사회와 정부를 비판해왔다. 그의 그림은 그림 자체로도 독창적이고 훌륭하지만 그 그림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힘은 놀라울 정도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


세상이 무의미 하게 느껴진다는 노장의 말이 조금 슬프게 다가온다. 그가 꿈꾼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지만 그의 이성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폭력은 다른 폭력으로 옮겨 갔을 뿐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의미 하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삽화
닉슨,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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